이름 대신 항상 '누구 동생'으로 불리는 것이 억울했다는 한 남자가 병원을 찾았다. 형에게 많이 맞고 자란 탓인지 어른이 된 지금도 형 앞에서 주눅이 든다는 것이다. 형의 폭력을 어머니에게 이르면, 형만한 아우 없다, 엄마 다음엔 형이라면서 오히려 나무라시고,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며 채찍과 당근으로 내 입을 봉해버렸다. 설도 다가오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형에 대한 적개심과 두려움을 안고 어떻게 형을 대면할지 걱정이 태산 같은 모양이다.
'광식이 동생 광태'는 형보다 일곱 살이나 어리지만 '여자랑 잘 때 속마음은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어둔다.'는 철칙을 지닌 바람둥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가 없다며 숱한 여자들에게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동생은 술주정뱅이에 직장도 변변찮은 말썽꾸러기이다. 반대로 형은 키도 크고 잘 생긴 외모를 지녔지만 연애 한번 못해본 순진남이다. 철부지 동생의 장래를 걱정하는 책임감만 보아도 맏이 기질이 톡톡하게 드러난다.
이렇듯 형제 서열에 따라 성격이나 역할이 많이 다르다. 맏이는 어릴 때는 큰 덩치로 동생들을 제압하려고 하고, 파워나 권력을 더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 수상 처칠이나 조지 워싱턴처럼 정치지도자 중에는 장남이 많고, 세계 기업 중역의 43%가 첫째였다고 한다.
항상 형보다 뒷전이고 약자 신세라고 생각하기 쉬운 둘째는 위험하고 모험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탐험가나 개혁주의자 중에는 차남이 많은데, 마르크스나 레닌, 페미니스트인 버지니아 울프도 둘째다. 대기업에서 '둘째 CEO'는 '첫째'보다 혁신적인 경영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은 엘리트였지만, 이복동생인 로저는 마약 복용으로 실형을 살았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의 맏아들인 윌리엄 왕자에 비해, 둘째인 해리 왕자는 나치 복장 착용과 알코올 남용으로 물의를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이런 차이는 점차 줄어들고 나중에는 가장 오랜 친구 같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형제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형제가 그리워지고, 자식에게 말 못할 사정도 형제에게는 털어놓기 쉽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걸 때늦어서야 깨닫기도 한다.
김성미(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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