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실력을 보여주마…'갈대의 순정'가수 박일남

1960년대 '갈대의 순정(오민우 작사·작곡)'으로 한국 음악계를 풍미했던 가수 박일남씨를 만났다. 정, 전선야곡, 마음은 서러워도 등 많은 히트곡을 냈지만 세월을 따라 그도 잊혀져갔다. 강원도 홍천에서 레저 사업을 하는 박일남씨는 사업차 가끔 대구에 들린다고 했다.

박일남은 "일단 잔 들면 끝까지 가는 거다. 정신이 한줌이라도 남은 상태에서 헤어진다면 우리는 잘못된 만남이다."며 술잔을 권했다. 그는 "술 마시고 안 취하는 사람은 없으며, 그래서 술은 진실이다." 고 말했다. 더불어 "술이 사람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해주기 때문에 술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이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박일남은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모습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맥주는 너무 심심하다며, 시종일관 맥주 8할에 소주 2할을 섞어 마셨다.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술맛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완전 할아버지가 되신 줄 알았는데 변함이 없다'는 말에 박일남은 "나이를 물으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이 묻지 말고, 학력 묻지 말고, 사는 곳 묻지 말자."고 했다.

레저 사업을 한다니 노래와 일정한 선을 긋고 살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그는 곧 새 트로트 앨범을 낼 것이라고 했다. '로맨스 사랑'을 부른 후배 여가수 강민주와 듀엣으로 했는데 100만장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100만장이라니 너무 과한 목표가 아니냐?'는 말에 "우리나라 노래도 100만장이 팔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박일남이 100만장 팔 수 있다면 후배가수들은 더 팔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박일남은 가수지만 관심영역이 다양했다. 역사와 종교, 철학, 문학을 시대와 영역 구분 없이 넘나들었다. 중세 일본과 중국, 로마를 다녀왔고, 일본의 무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오다 노부나가, 중국의 정치가 마오쩌뚱, 덩샤오핑의 업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일본어에 능하고 엔카(演歌-일본 대중가요 장르의 하나)를 잘 부른다고 했다. 어린 시절 일본어를 배웠고, 원서로 일본 소설을 읽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일본소설을 번역할 실력이냐는 말에 그 정도는 안되고, 일본 여자를 꼬실 정도는 된다, 며 웃었다.

◇ 흘러간 가수 아닌 현역가수

박일남은 "나는 흘러간 가수가 아니라 여전히 잘 나가는 가수다. 묵은 돌도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 지금도 내가 노래부르면 발칵 뒤집어 진다. 어디 노래할 만한 곳 없느냐?"고 했다. 그의 노래를 직접 듣고 싶었고 또 그의 호언대로 무대가 발칵 뒤집어 지는 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손님들이 꽤 많은 인근의 가라오케를 찾아 '박일남 즉석 음악회'를 열었다. '갈대의 순정' 부른 박일남입니다, 라는 소개가 있었지만 손님들은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박일남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자 분위기는 변했다. 한두 사람이 무대 앞으로 다가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맞다, 맞다'라며 손뼉을 쳤다. 이어 사람들이 하나둘 무대 앞으로 나왔고,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무대 앞은 손뼉치며 춤추는 사람, 휴대폰 카메라를 터뜨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갈대의 순정'이 끝나자 앙코르요청이 쏟아졌고 가수 박일남은 '마음은 서러워도' '정' 등을 잇따라 불렀다. 그가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앙코르 요청은 계속됐다. '노래 더 안 불러 주면 집에 간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박일남은 무대에 오르지 않았고 손님들이 자리로 찾아와 박일남을 자신들의 자리로 잡아끌었다. 불려간 자리마다 그는 술을 마시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람이든 유행이든 인기든 떠나면 곧 잊혀지는 세월이다. 가수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박일남은 그의 호언대로 '흘러간 가수'가 아니라 '잘 나가는 현역가수'였다.

◇ 음악인 권익 보호 길 찾아야

박일남은 2000년 10월부터 2002년 1월까지 전국 예능인 노련 위원장을 역임했다. 예능인의 권익을 찾고, 예능인의 지위와 복지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했다. 지금은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그런 사람답게 박일남은 음악 무료다운로드를 강하게 비판했다.

"저작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사라질 것이고, 결국 좋은 노래를 들을 기회도 사라진다."

그는 '갈대의 순정'처럼 오래된 노래는 그냥 다운로드받아도 좋지만 신곡은 반드시 정당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가요의 침체원인을 "음반판매 축소에 따른 레코드사의 붕괴에 있다."며 "이제는 레코드판매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을 이용해 음악을 다운로드받는 소비자들이 급속하게 늘어난 만큼, 인터넷판매를 늘이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 나이를 먹었지만 언제나 낭만파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박일남의 휴대폰은 무시로 울었다. 그 중 한 통의 전화에 박일남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소상히 설명했다. 전화를 끊은 후 "둘째 부인이야. 설명 안 해주면 내가 바람피우는 줄 알아."라고 했다. 더불어 그는 자신에게 아내가 두 사람 있으며, 첫 아내와 사이에 딸 셋, 두 번째 아내와 사이에 아들이 한 명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내가 둘이라는 사실을 민망해하지 않았다. 한 명쯤 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농담을 덧붙이기도 했다.

긴 시간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지만 박일남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농담을 나누다가 불현듯 "보들레르는 말이 너무 많아. 너무 감상적이어서 별로야." 라며 외국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한국의 시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 몇 편을 암송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써놓은 시가 몇 편 있다며 짧은 시를 암송했다.

라는 시는 무척 짧고 다소 장난기까지 섞인 듯 했다. '벗었지만 춥지 않다. 겨울바람이 민망할까봐 나무는 흔들어 줄뿐이다.'

이라는 시는 더욱 짧았다. '잘가, 잘 있어.'가 시의 전부였다. 일본의 하이쿠보다 더 짧은 시였다. 하이쿠가 '계절'을 시어로 쓴다면, 박일남의 시어는 '사랑'이었다. 그는 언제나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사랑은 만남도, 이별도, 간절함도, 뜨거움도 아닌 '고독'이라고 정의했다.

박일남은 1960년대, 70년대 연예계 이야기를 2월부터 본지에 연재한다. 당시 연예계 뒷 이야기와 청춘 박일남에 관한 보고서가 될 듯하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박일남은…

부산출생 가수. 갈대의 순정, 정, 전선야곡, 여인우정, 정주고 내가 우네, 고향에 찾아와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렀다. △제 11대 가수분과 위원장, 사단법인 한국연예협회 부이사장 △1985년 가수노동조합 설립 초대 위원장 △(주)코리아뮤직 회장 △전국 예능인노동조합 연맹 가수 지부장 △재단법인 한국인력개발원 회장 (한국연예인 국외송출 협의기구) △한국노총 전국예능인노동조합 연맹 위원장 △(주) 민 기획 회장 △(현)한국노총 전국예능인노동조합 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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