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 '가방이야기'展 기획 미술강사 전혜주

"전시에 대한 고정관념 깨고 싶었어요"

▲ 아동미술 강사 전혜주 씨가
▲ 아동미술 강사 전혜주 씨가 '가방이야기'전 작품을 설치하고 있다.

스티로폼을 조각내는 한편으로 뚝딱뚝딱 못질 소리가 가득하다. 스티로폼 만지는 사람들은 스티로폼 가루를 온몸에 뒤집어 썼다. 알록달록 칠한 합판을 조립하는 팀원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힌다. 3천500점의 작품. 전시회치곤 대단히 많은 이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잠시도 쉴 틈이 없는 현장이다.

이 소동(?)은 미술 강사인 전혜주(39) 씨가 기획한 '가방이야기'전 준비 때문이다. 24일부터 2월 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일반 1~3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 준비로 바쁜 전 씨를 23일 현장에서 만났다. 몇 날 며칠을 전시물 설치 작업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전 씨였지만 아이들과 함께 준비해 온 결과물을 이제서야 공개하게 된다는 기쁨 때문인지 목소리는 가볍기만 했다.

"전시에 대한 개념을 깨 주고 싶었어요."

지난해 6월부터 자신이 강의를 맡은 백화점·방송국 문화센터 수강생을 대상으로 전시 기획을 시작한 전 씨의 목적은 분명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하얀 전시공간에서, 유리액자에 곱게 넣은 작품을 아주 어렵게 관람하는 것만이 전시가 아님을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전 씨는 먼저 아이들 어머니들에게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전시회에 대한 개념이 없는 분들이 예상 외로 너무 많았다."고 했다.

부모들이 '전시회는 얼마 동안 하는지', '작품은 액자에 넣어야 하지 않느냐', '작품은 바로 가져오면 되는지' 등을 질문하면서 이런 의도를 더욱 굳혔다. 그래서 일일이 다 설명해 주면서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작품을 준비하도록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전시 준비는 '산 넘어 산'이었다. 막상 어른들은 설득했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지도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30개월에서 중학생까지'.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어린이들의 나이대가 다양했기에 저마다 작품 완성 시간이 달랐던 것이다. 소포지를 이용해 만든 가방은 구멍을 뚫어 노끈으로 꿰는 작업에 4주가 걸렸다. 1주일에 겨우 한 번 열리는 수업이라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500명의 학생이 한 학기(3개월)당 3점씩 두 학기, 마지막 학기에 1점씩 작업을 했으니 이번 전시 준비에 들인 노력이나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없는 법. 전 씨는 먼저 남편인 조각가 이상헌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단순히 아이들의 작업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이 동참하길 원했던 것. 이 씨는 이를 동료 조각가들에게 알렸고, 이들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전시회에 흔쾌히 응했다. 이 씨도 작품을 냈고, 이장우나 손파 같은 조각가와 설치작가들이 출품했다. 이번 전시회에 맞춰서 새로이 작업한 것들이다.

전 씨의 후배들도 "단지 후배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노역(?)에 동원됐다. 전시실 설치 작업 때문에 오전4시까지 작업하고 다시 아침에 일 나와준 꿋꿋한 동생들이다. 전 씨는 이와 관련 "한날은 후배가 작업거리를 집에 두고 왔는데 그날 저녁 집에 가보니 부모님이 대신 작업을 해 놨더라."며 재미있는 일화도 들려 주었다.

전 씨와 같이 강의하는 2명의 동료 강사도 큰 도움을 줬다. 이들은 '아이들 작품을 썩힐 수 없다.'며 자비를 털어 전시공간을 하나 더 확보해 주었다. 워낙 방대한 양의 작품 때문에 일부 작품은 걸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구세주가 됐던 것이다. 아이들 어머니의 도움도 컸다. 전 씨의 뜻을 존중해 한 학기에 1만 원씩 3만 원을 갹출해 준 돈으로 전시비용을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씨는 "어머니들이 전시 기간 중 전시실을 지켜줄 당번 역할도 맡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획 단계부터 전시 준비까지 '고생 바가지'였지만 "어머니들이 미술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돼 미술문화 보편화에 도움이 된 것 같다."는 것이 전 씨의 잠정 평가이다. "엄마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053)606-6114.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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