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삼강주막

金和鎭(김화진)은 구한말인 1895년에 태어난 사람으로 조선시대 사회풍습에 관해 두루 해박한 지식을 가졌었다. 그의 책 '한국의 풍토와 인물'(1973년)에 수록된'옛날의 음식점'편은 이 땅의 옛 술문화를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까지('옛날의 음식점' 집필 연대는 1967년) 서울 안의 음식점은 목로술집, 內外(내외)술집, 사발막걸리집, 母酒(모주)집, 이채를 띠고 여자가 助興(조흥)하는 술집은 색주가뿐이었다"고 썼다.

이 중 목로주점은 서서 술을 마시는 선술집, 내외주점은 "행세하던 집 노과부가 생계에 쪼들려 건넌방이나 뒷방을 치우고 넌지시 술을 파는 술집", 색주가는 여자가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불러 흥을 돋우는 그렇고 그런 술집이었다. 사발막걸리집은 사발 단위로 값을 정해 파는 술집, 모주집은 술찌끼를 걸러낸 賤品(천품)의 술을 파는 집으로 기록되어 있다(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중 ).

TV 사극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酒幕(주막)의 경우 대개 행인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길목이나 장터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나그네와 보부상 등이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다리쉼을 하는가 하면 하룻밤 유숙하는 여관 역할도 했다. 팔도를 떠도는 장사치들이 주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아 주막은 상품경제의 발달과 관계가 있고 따라서 조선 후기 정도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桑田碧海(상전벽해)가 된 우리사회에서 주막 역시 옛풍경이 된 지 오래다. '마지막 주막'으로 알려졌던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의 삼강주막도 3년 전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문을 닫았다. 주막을 아끼던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 섭섭한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죽었던 삼강주막이 다시 살아났다. 경북도가 민속자료 304호로 지정한 데 이어 쓰러져가는 주막을 초가지붕 옛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글을 모르던 윤 할머니가 외상값을 큰 금 작은 금으로 표시했던 흙바람벽도 살려냈다.

마을 주민 중에서 주모를 선발, 최근 주막문을 열자마자 전국 각지서 하루 평균 200여 명씩 찾아드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한다. 옛 정취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막걸리 사발에 배추전과 묵'두부,거기다 주모의 푸짐한 인정까지 얹혀지는 삼강주막의 부활소식이 반갑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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