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대구 중구 계성고 농구장. 계성고와 서울 신림고 농구부 선수들이 친선경기를 가졌다. KBL(한국프로농구연맹) 선수들 못지 않은 빠른 패스와 드리블, 림을 가르는 정확한 슛 등 고등학교 선수들이 내뿜는 농구 열기로 체육관이 후끈 달아올랐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선수들 사이에서 심판을 맡은 최성열(39) 씨가 보였다. 호각을 불고, 선수들의 파울을 지적하며 쉼없이 코트를 오가는 그의 얼굴에도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 11㎞를 뛰어야 하는 심판!
지난 2000년 비경기인 출신으로 국내 최초로 국제심판이 된 최 씨는 "심판은 경기의 조율사이자 연출가"라고 정의를 내렸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이 심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제가 심판을 맡은 경기가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러졌다는 평가를 받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가장 격렬한 구기 종목 가운데 하나인 농구경기의 심판을 맡으려면 선수들에 버금가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농구 한 경기의 심판을 맡으면 대략 11㎞를 뛰어야 합니다. 여기에다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야 해 체력 부담이 매우 큰 편이지요. 한 경기를 소화하고 나면 체중이 1, 2kg 정도 빠질 정돕니다. 평소 앞산을 뛰어다니며 체력 관리를 하고 있어요."
최 씨는 국제 무대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농구 심판이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동메달 결정전(우즈베키스탄-대만),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독일-호주 남자 농구 8강전 등 국제경기 심판을 자주 봤다. 2004년과 2006년에는 양 학교의 경쟁이 치열해 심판을 보기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 연세대-고려대 간(연고전) 농구 경기의 심판도 맡았다.
"대구 영남고에서 열린 독일과 호주의 하계U대회 농구 8강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지요. 8강 경기지만 사실상의 결승전이어서 신경을 바짝 기울인 데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 심판을 맡은 체코의 이반 씨와 같이 심판을 봐 더욱 뇌리에 많이 남습니다." 세계 최고의 농구심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반 씨는 최 씨보다 나이가 아홉 살 많지만 요즘도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절친하게 지내고 있다.
1년에 적게는 30경기, 많게는 50경기의 심판을 보는 최 씨의 별명은 '칼'. 상황 판단이 민첩하고 몸 동작(시그널)이 크고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후배 양성이 '꿈'.
최 씨가 국제농구연맹(FIBA) 국제심판이 되는 데엔 꼬박 10여 년이 걸렸다. 비경기인 출신으로는 국내 '1호'였고, 국내 최연소 국제심판의 영예도 같이 안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공을 끼고 살 정도로 농구의 매력에 푹 빠졌지요. 몸과 몸이 부딪치는 농구는 경기를 통해 끈끈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집안의 반대로 비록 선수 활동은 못했지만 대학에 진학하고도 농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장 가까이서 농구 경기를 접하는' 심판의 길을 택했다. 농구를 통해 인연을 맺은 사람이 800여 명에 이를 정도다.
지난 1991년 대학 2학년 때 2급 공인심판자격증을 따 심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최 씨는 지역대회에서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1995년 1급 심판자격을 따고 다시 5년 만에 국제심판자격까지 얻어 '호각'으로 코트를 호령하고 있다. 대학 때 그가 몸담은 한누리농구회는 KBL 심판을 3명이나 탄생시키는 등 우리나라 농구계에서 '심판 배출의 요람'으로 통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제농구심판은 10여 명 정도다. "국제심판이 되려면 체력과 실기, 영어, 면접 시험 등을 통과해야지요. 또한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자제력도 바탕이 돼야 합니다." 구기 종목 중 농구는 가장 예민한 경기인 만큼 심판을 보는 데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BL 심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 씨는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제가 국제심판이 되는 데 장세욱 대구농구협회 부회장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지요. 선배로부터 받은 도움을 이제는 제가 후배들에게 돌려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 씨로부터 노하우를 배우고 있는 김민석(27·2급 심판) 씨는 "농구장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최 선배님은 리더십을 발휘,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 씨는 "판정에 대한 지나친 불신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심판계의 급선무"라며 "앞으로도 국제대회를 통해 한국 심판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 농구 국제심판이 되는 길
농구 국제심판이 되는 길은 매우 까다롭다. 대한농구협회에서 관리하는 1급 심판 자격을 먼저 갖춰야 하는데 3급, 2급 심판 자격을 차례로 따야 1급 심판 자격을 노려볼 수 있다.
3급 심판 자격을 얻으려면 1년에 한 번 있는 심판강습회에 두 번 참가하면 되지만 2급 심판 자격증을 받으려면 3급 심판 자격을 취득한지 1년 이상 지나고 심판강습회를 수료한 뒤에야 실기, 이론, 체력테스트가 포함된 2급 심판 자격취득 시험을 칠 자격이 주어진다.
2급 심판 자격을 갖추고 있어도 2년이 지나야 하고 별도의 심판강습회를 수료하고서야 1급 심판 자격취득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 3급에서 2급, 2급에서 1급으로 승급하기 위해 치러야 할 경기 수는 별도로 정해져 있으나 유동적이다.
어렵사리 갖춘 1급 심판 자격증. 그래도 올림픽 농구 경기에 심판을 보기엔 멀었다. 대한농구협회 심판부의 추천을 받아야 FIBA(국제농구연맹)가 주관하는 국제심판 자격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마지막 남은 관문이 또 있다. FIBA가 경험, 실력 등을 고려 직접 올림픽에 나설 심판을 선정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프로농구 심판이 되려면 선수 출신이거나 대한농구협회 1급 심판 자격을 갖춘 뒤 서류심사, 체력 테스트, 실기 등 시험을 따로 치러야 한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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