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부끄럽게 검은 봉투 건네는 할머니

담장이 있던 옛 시절이 그립다. 낮은 담장 사이로 웃음과 정을 주고받던 이웃사촌이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요즘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생소할 정도로 민심이 각박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랑하고 싶은 소중한 이웃사촌이 있다.

우리 집 옆에 사는 인심 좋은 은진이 할머니가 나의 이웃사촌이다. 그녀는 아들이 이혼과 동시에 딸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떠나버려 어린 손녀딸과 둘이 산다. 파지를 팔아 생활하지만 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굽은 허리 탓에 몸이 불편하건만, 늘 열심히 파지를 모은다. "내가 살아있어 우리 손녀딸을 키울 수 있잖아, 난 그걸로 족해."

나는 할머니에게 으레 퍼준다. 자연스레 주고 싶다.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그냥 마음으로 뭐든 도움이 되고 싶고 주고 싶다. 김장철이면 배추포기를 담아주고, 딸이 입던 옷을 다려 손녀에게 주라고 건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할머니는 고개를 연거푸 숙이며 고마워한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할머니. 그녀에게 마음을 전할 때면 난 따뜻하고 행복해진다.

어느 날, 할머니가 찾아왔다. 검은 봉투를 건넨다. 거기에는 비누가 들어 있었다. 손수 만들었단다. 주고는 싶은데 줄 것이 없어서 이거라도 가져왔다며 부끄럽게 건네는 할머니.

마음이 너무 예쁜 내 이웃사촌. 그녀에게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 어서 아들이 찾아와 온 가족이 함께 사는 그날을 그려본다.

배옥희(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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