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 김수학 박정희 기념관사업회 이사

박정희사업회 200억 재산?…말도 마소, 밥값 아끼려 식후회의

지난 15일 서울고법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사업 국고보조금 환수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뒤 18일 박정희 기념관사업회 이사인 김수학(82) 옹과 마주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한 그는 소박한 차림이었다. 등산모자를 눌러 썼고, 한 쪽 어깨엔 뭔가 가득 찬 배낭이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두 손엔 정리안된 자료 뭉치가 한아름 안겨 있었다.

"기념사업회 이사회를 마치고 택시를 탔는데 차가 막혀 이렇게 늦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이유를 거듭 설명하면서 미안해 했다.

정부가 지난 2005년 국고보조금 200억 원 교부취소 결정을 내린 뒤, 기념사업회 운영은 극도로 악화됐다고 한다. 서울시내의 사무실을 3분의 1로 줄여 외곽으로 옮겼고, 유급직원도 대폭 줄였다.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이사회가 열리는데 회의 시간을 오후로 합니다. 식후에 회의를 갖는 것은 점심값을 아껴보자는 취지입니다."

현재 기념회측 재정상태는 회의를 보조할 여력도 없는 상태다. 김 이사도 10년간 이사회 일을 맡고 있지만 보수를 받아본 일이 없다. "200억 원을 묶어 둔 것도 모자라 이에 대한 이자도 걷어가는 판이니 재정적 여력이 남아 있겠습니까?" 당초 정부보조금 환수방침에 대한 억울함을 항변했다.

'돈도 안되는 일에 왜 그렇게 매달렸느냐?'는 질문엔 "오기로 그랬다."고 답했다. 국고보조금 환수조치와 사용승인을 위한 모금운동 등을 조건으로 내건 사례는 행정 역사상 전례없는 일이라 설명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공약인 정부사업을 또 다른 정권(노무현 정부)에선 방해하는 있을 수 없는 처사에 너무 억울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념관사업에 관여하기 전 그는 '농부' 였다고 했다. 1969년 대구시장, 72년 내무부 지방국장, 74년 경북지사, 78년 국세청장 등 '잘 나가던' 공무원이었다. 그런 그가 퇴직후 어머니가 물려주신 집이 있는 경북 월성으로 내려가 외동읍 명예읍장을 자원했다. "기념관 사업이 완료되면 다시 낙향해 여생을 보낼 것입니다. 이 집마저 없어지면 나와 내 자식들의 뿌리가 없어 지는 것입니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내 고향과 내 집을 지켜야죠."

이번 판결에 대한 소감을 묻자 "아이고, 말도 마소."라며 그동안의 고생이 떠올랐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기념관사업은 자꾸 말이 와전되기 때문에 깊이 안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념관이 경북 구미로 다시 이전될 수 있느냐?'고 끈질기게 물었다. 마지 못해 그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통령)기념관은 여러 군데가 있어요. 현재 구미시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기념관 사업의 기능을 분리하는 방안은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서울 상암동에 건립될 기념관은 도서관 위주의 연구기능을, 구미는 박정희 테마파크를 만드는 식으로 진행되면 어떨까요?"라는 제안도 내놓았다.

현재 이 같은 방안을 두고 사업회 측과 남유진 구미시장과 의견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구미시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인터뷰 뒤 지역 광역단체장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만 말해 달라고 부탁하니 긴 답변이 돌아왔다. "경북도지사 시절, 큰 산불이 기억나네요.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해 피해 상황을 보고 받고 있는데 갑자기 내무부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국세청장에 발령났다고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합디다. 서둘러 산불을 진화했지요. 하지만 검게 그을린 경북을 뒤로 하고 중앙 부처에 출근하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런 그가 이젠 지역의 도움을 구했다. 국고보조금 사용 승인은 허락됐지만 아직 그가 그리고 있는 기념사업을 추진하기엔 부족한 상태라는 것. "제가 아는 사람 중 한 명은 문방구를 하는데 매달 몇 천원씩 꼬박꼬박 모금운동에 동참합니다. 지역에서도 모금 운동이 활발해져 기념관 사업이 성공하는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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