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미국에는 서부개척사만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서부 개척 이전에 태평양개척사가 있었다. 하와이를 병합하고, 괌을 미국령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또 어떤가. 메이지유신 이래 본격적으로 바다로 진출해 한반도와 대만·남양군도 등을 식민화했다. 일본의 태평양식민화는 근 100여년 전이며, 그것이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졌다.
한반도는 어떠한가. 3면이 바다이면서도 해양을 포기했다. 공도정책으로 섬을 비웠으며, 출국금지령을 실시했다. 이 같은 빈곤한 역사관 덕분에 해양세력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슬픈 역사를 거쳐야 했다. 바다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동해 명칭조차 국제수로회의에서 일본해(JAPAN SEA)로 등재됐다.
독도와 울릉도의 국제적 영웅인 안정복은 영웅처럼 인정받았을 것 같지만 정작 끝내 귀양살이로 내팽개쳐졌다. 독도수비대도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다. 이순신 장군도 총탄에 쓰러졌기에 망정이지, 혹시나 살아있었더라면 전후에 질투와 모함에 시달려 대역죄인으로 내몰렸을 법하다.
이렇듯 바다를 지켜온 자, 그네들은 예외 없이 죽거나 죽음 직전으로 내몰렸으니, 어떻게 이런 비겁한 역사가 있었던가! 영국·일본·네덜란드 등을 예로 들 필요도 없이 국가해양력은 반도국가의 운명이며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다.
내륙지향적으로 빠져들면, 그 순간 한반도의 운명은 불운한 길로 접어들 것이다. '충북이나 경북 산간은 내륙' 운운은 그야말로 우리끼리의 말이다. 한반도는 어느 곳에서건 두어 시간 이내에 바다에 닿을 수 있으며, 그 두어 시간 이내 거리란 한반도 전체가 곧바로 바닷가임을 뜻한다.
한반도의 기후는 강력한 바다의 영향권에 놓이며, 태풍은 두말할 것 없이 적도의 웜풀에서 만들어져서 쿠로시오난류를 타고 올라와 한반도와 일본을 습격한다. 따라서 중요한 기후예측은 산간의 기상대에서 할 일이 아니라 바닷가에서 정보를 얻을 일이다.
이처럼 바다는 한반도의 기후환경과 풍토 그리고 국방과 경제, 사회와 문화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까. 자신의 손에 쥐어진 바다의 보배를 일상적으로 망각하고 살아온 것이 한반도의 슬픈 역사였다.
작금의 정부부처 감축 논의가 실로 기능주의에만 매몰되어 한반도 운명이 달린 바다 문제를 경솔하게 다루는 놀라운 사실을 목도하고 있다. 바다문제는 여야를 떠나서 21세기의 중차대한 과제인 바, 해양부 폐지라는 육지중심사관이 우리 시대에 다시금 출몰함에 경고음을 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다문제는 그렇듯 기능적인 측면으로만 다룰 사안이 아니다. 일본과 영국·중국 등에 비해 한반도는 해양에 관한한 무시 및 무지로 일관했으며 아직도 낮은 인식수준을 드러내준다. 육지중심 사고에서 해양중심 사고로의 전환이 요청되는 시점인데도 역사의 축을 바다에서 다시금 내륙으로 되돌리려는 사변이 벌어지고 있다.
영토 지키기는 육지에 머무는 수동적 방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로 적극 나아갈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뒤로 물러서서 육지로 뒷걸음쳤던 조선시대의 잘못을 다시 범하려고 하고 있다. 해양부의 존립은 바다의 종합적 관리라는 차원에서도 너무도 중요하다. 바다를 종합적으로 개발·관리·보존함은 선진 각국의 보편적 추세다. 그런데 이번 인수위의 해양부조정안을 보니 국가의 미래가 실로 걱정이다.
국토해양부란 이름 아래 오로지 내륙의 건설교통만 담당해온 육지중심 시스템에 흡수병합 방식으로 세계사적 해양의 미래를 떠맡기는 방식이 옳은 것인가. 농림에 수산과 식품을 붙이고서 해양경찰청도 붙였다. 독도 영유권문제를 농림수산식품 파트에서 결정한다! 미래에 우리를 먹여살릴 해양과학의 미래나 많은 이들이 나날이 환호하는 해양문화관광을 지금의 건교부나 농림부 같은 육지중심기관에서 관장한다는 말인가!
국가해양력 제고야말로 분명히 21세기형 사고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확대되기는커녕 분산 해체되는 사태를 목전에 두고 어떤 지혜를 발휘해야할까. 태안의 기름제거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기름 엎지르기는 순식간이었다. 집중된 국가해양력을 폭파시킴은 어쩌면 간단할 수 있지만, 국가해양력을 다시 일으킴은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정다산의 경세유표처럼, 21세기 벽두부터 인문학자가 한반도의 미래를 우려하는 해양경영론을 재론하거니와, 바다를 무시하여 끝내 해양세력에게 지배당했던 슬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되길 강권한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촉구한다.
주강현(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