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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칼럼] 三星, 좋은 그림 더 많이 사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는 화가 고야가 그린 '마야부인' 작품 두 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똑같은 모델이지만 한 작품은 옷을 벗은 '옷 벗은 마야'이고 한 작품은 옷을 입은 채 그린 '옷 입은 마야'다. 오래전 어느 성냥 공장 회사가 성냥갑에 벗은 마야 부인 그림이 그려진 딱지를 붙여 판매했다가 한국의 수사기관이 외설적인 그림을 상품에 붙여 팔고 있다며 형사 입건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예술작품이냐 퇴폐적인 외설물이냐는 인식 차이는 보는 사람의 예술적 소양이나 그 사회의 문화적 마인드에 의해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성냥곽에 붙인 마야부인을 외설물이라고 국가기관이 입건한 사실을 죽은 고야가 알았다면 기가 차서 웃었을지도 모른다.

예술과 관련된 시빗거리가 생겼을 때 문화나 예술작품 세계는 정치나 법률적 眼目(안목)과 기준으로 따지기 전에 그야말로 문화적인 열린 마인드로 생각하고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 특검이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이 잡듯 뒤지고 사진 찍는 미술품 수장고 수사는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는 합당한 처사일지 모르나 문화적 감각으로 본다면 조금은 황당스런 행보였다. 창고에서 1만 5천 건이 넘는 미술품들이 쏟아져 나온 걸 두고 수사기관과 보통시민들과 문화예술을 생각하는 계층 간의 생각과 반응은 제각각일 수 있다.

예술작품을 굳이 비자금으로 사 모은 것이 온당한 일이냐는 논란은 제쳐 두자. 재벌이나 재력가의 미술품 수집은 국가나 국민이 장려해야할 과제다. 배부른 귀족들의 돈 놀음이나 상류사회의 사치스런 취향쯤으로 매도할 일이 아닌 것이다. 바깥세상은 벌써 오래전부터 그렇게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인천공항을 이륙해서 세계 속으로 날아가 보면 미술관이나 문화상품 하나로 도시 하나가 먹고사는 나라들을 수두룩하게 볼 수 있다.

세계적인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도 애당초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고작 12점의 작품을 수집해 시작된 미술관이다. 지금은 38만 점에, 회화작품만 12만 점이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은 열차驛(역)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다. 런던의 모던 갤러리도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스페인 구겐하임 미술관 역시 피폐된 제철소와 조선소를 개조해 미술관을 지어 도시 전체를 먹여 살리는 관광문화공간으로 살려냈다. 대박을 낸 것이다. 문화공간이 때로는 더 큰 미래 산업이 된다는 성공사례를 보여준 경우다.

삼성의 1만 5천 점 그림 중엔 칸딘스키나 피카소 작품 등 세계적 근현대 名畵(명화)가 망라돼 있다고 한다. 그 작품들이 언젠가 전자공장이 밀려난 자리에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선보일 때 문화관광산업의 명소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한 돈으로 그림을 사라는 뜻은 아니다.

록펠러의 부인이 세운 뉴욕현대미술관도 15만 점을 갖고 있다. 철강계의 거물인 구겐하임은 라스베이거스, 스페인, 베를린, 베니스 심지어 중동의 아부다비에까지 미술관을 세웠다. 중동의 아부다비에 미술박물관을 지을 때 로열티만 1조 3천억 원을 받아냈다. 그게 문화의 힘이다.

록펠러나 구겐하임 같은 재벌 외에도 이태리의 메디치家(가)가 세운 우피치 갤러리는 세계 最古(최고)의 미술관이다. 세계인들이 재벌이나 왕가가 세운 미술관에 대해 돈 많은 재벌의 돈 놀음이나 왕족의 사치로 매도한다는 소리 들어본 적이 없다. 부르봉 왕가가 세운 루브르에 전 세계인이 줄을 서고 대통령이 적극 설립을 지원한 퐁피두센터에도 권력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없다. 오직 지원하고 고마워할 뿐이다.

삼성이 미래의 세계적 미술관 설립을 꿈꾸며 수집한 미술품은 이왕이면 문화적 시선으로 바라봐줄 필요가 있다. 비자금 아니고도 더 많은 세계적 작품을 마음 편하게 사모을 수 있도록 稅制(세제) 지원을 모색하고 도와주는 게 특검으로 옥죄는 것보다 문화강국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 길이다.

1만 5천 점이면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이나 벨기에 왕립 미술관, 영국 국립갤러리, 러시아 푸슈킨 미술관과 어깨를 겨룰 수 있다. 특검검사의 문화마인드는 어느 수준일까.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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