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 개학날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지금은 긴 겨울 방학 기간, 한 학년을 시원스럽게 마무리하고 다음 학년을 힘차게 시작하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중요한 기간이다.

꽤 오래전에 우리 1학년 민화가 했던 방학 과제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민화가 정한 방학 과제는 '밥 빨리 먹기'였다. 밥은 꼭꼭 씹어 천천히 먹는 것이 올바른 식사법인데 빨리 먹기라니? 누가 들어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는 과제를 민화는 정했다.

민화는 급식 시간만 되면 느림보였다. 민화 때문에 일과를 늦게 마치게 되어 아이들이 안달을 해도 민화는 태평이었다. 그런 민화였으니까 '밥 빨리 먹기' 과제는 민화에게는 너무나 적절한 과제였다.

"선생님, 저는 밥 빨리 먹기 성공했어요."

개학 날 아침부터 민화가 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정말?"

"정말이라니까요. 근데 선생님은 성공 못 했지요?"

아이들과 약속한 내 방학 과제는 담배 끊기였다.

"이야! 잘했다. 정말 잘 했다. 이제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을 수 있단 말이지?"

"천천히가 아니라 빨리 먹는다니까요."

첫날은 급식이 없어서 민화의 '밥 빨리 먹기' 과제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 이튿날부터 민화의 자랑은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정말 그랬다. 민화는 꼭꼭 씹어서 아주 열심히 밥을 잘 먹었다. 숟가락들 들고 멍하니 앉아 있던 습관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꼴찌여도 한참 꼴찌기만 했던 민화가 중간 앞으로 빈 식판을 갖다 내고 가방을 챙기곤 했다.

'저러니 그렇게 자랑을 했지. 늘 늦다고 야단을 맞던 민화가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민화의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방학 기간에도 빨리 학교에 달려가서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학날 발걸음은 또 얼마나 가벼웠을까?

사람은 버릇으로 살아간다. 따지고 보면 교육도 바른 버릇들이기 다름 아니다. 그대로 굳어져버리면 평생을 두고도 고치지 못했을지도 모를 버릇을 방학 한 달 동안 거뜬히 고쳐냈다면, 그보다 더 보람 있고 멋진 방학이 어디 있겠는가! 설령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애써 고쳐보려고 애쓴 것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적어도 버릇이란 잘못 들여놓으면 이처럼 고치기 어렵고 힘들구나 하는 깨달음이라도 얻었을 터이니 말이다.

방학을 며칠 앞둔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는 자기 스스로 정한 개인 방학 프로젝트 발표회가 있었다. 요사이 아이들답게 파워포인트 화면을 띄워 가며 설명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음식 고르게 먹는 습관을 꼭 몸에 배도록 하겠다는 아이,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나름대로 고쳐 써 보겠다는 아이, 텔레비전을 보고 낱말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 놀이를 조사하여 보고 직접 익히겠다는 아이, 태극기의 변천 과정을 자세히 알아보겠다는 아이??……. 어느 것 하나 같은 과제가 없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 모두는 스스로 정한 자기 방학과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겠지.

개학 하는 날 우리 아이들 모두가 발걸음도 힘차게 교문으로 들어섰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생님과 동무들에게 방학 과제 자랑을 하고 싶어서 안달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곧 이어 진급하는 다음 학년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윤태규(대구금포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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