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론식 수업이 뜬다…논술 축소에도 여전히 유효

개념추론의 탐구력 길러줘

▲ 비판적·논리적 사고력 신장이라는 논술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교실에서도 그 주요한 방법으로 토론식 수업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시지고에서 1년째 계속하고 있는 토론수업 모습.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비판적·논리적 사고력 신장이라는 논술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교실에서도 그 주요한 방법으로 토론식 수업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시지고에서 1년째 계속하고 있는 토론수업 모습.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토론식 수업이 뜨고 있다. 대입제도가 올해 다시 바뀌면서 논술, 심층면접 등 대학별고사의 비중은 축소될 조짐이지만 여기에 필요한 주제 중심, 토론식 수업의 유용함은 여전하다는 게 교육계 내부의 평가다. 교사들은 토론이야말로 주어진 문제나 개념에 대한 탐구력, 추론에 대한 탐구력, 대안과 가치에 대한 탐구력을 길러주는 주요한 학습도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구 시지고, 토론식 논술 수업 현장

지난 26일 대구 수성구 시지고등학교 2학년 5반 교실. 학생 10여 명이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교사가 제시한 문제는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종교적 시각과 정치적 시각으로 나눠 상호 비판해보기. 찬반 두 팀으로 나눈 학생들은 제시문 중 보스니아 내전의 원인을 종교 문제로 볼지, 정치적 문제로 볼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양경혜 양은 "보스니아 내전은 인종청소를 묵인하는 듯한 잘못된 여론이 형성돼 빚어진 전쟁이지, 단순히 종교 차이로 빚어진 전쟁이 아니다."며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토론 도중 개인별로 작성한 토론지를 보면서 논점과 재반박 논지를 꼼꼼히 체크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TV토론의 패널들 못잖게 잘 훈련된 듯했다.

이 학교 논술동아리('논술둥지')를 담당하고 있는 조한진(일반사회) 교사는 "그러잖아도 논술반 학생들이 TV 100분 토론, 시사토론을 보고 와서 수업 때 감상을 얘기하기도 한다."며 "논리적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데는 토론만큼 좋은 수업 방식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논술수업 시범연구학교인 시지고는 지난해부터 토론식 논술수업을 통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학생 50여 명, 교사 3명으로 구성된 시지고 논술동아리는 지난 학기 동안 주1회 100분씩 방과후학교 수업시간을 통해 토론 수업을 진행했고, 이번 방학에는 토요휴업일에 맞춰 수업을 하고 있다. 1년 가깝게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의 토론 실력은 단순한 말솜씨의 수준을 넘어섰다. 조 교사는 "지난해 시범수업 때 학생들에게 '개고기 논쟁으로 바라본 문화상대주의'를 논제로 미리 제시하고 찬반 토론을 시켰더니 주어진 50분이 모자랄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고 기억했다.

상대편 주장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을 통해 사고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은 토론이 주는 또 다른 매력. 장위식 군은 "내 생각이 상대방의 생각과 충돌할 경우 미리 준비해 간 반박 논거를 제시해 상대방의 논리를 공격할 때 짜릿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김유진 양은 "토론을 통해 나의 논리를 전개하고 수정해나가는 것은 일 대 일 첨삭논술이나 마찬가지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토론 수업 기법 어떤 것 있나

하지만 토론식 수업이 우리나라 교실 현장에서 정착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토론 주제에 대한 조사가 사전에 이뤄져야 하는데다 최소한 2시간 이상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토론식 수업을 시도해보기가 여의치 않다는 것.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대학입시'다. 배진우(윤리) 교사는 "학생들 입장에서 토론은 당장 수능시험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토론 자체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학생들이 입을 잘 떼지 않는 것도 토론 진행의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토론 수업 기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구시 교육청은 이달 중순 서울 등 타 지역에서 논술수업을 선행·전문화시킨 초·중등 교사들을 초빙, 토론 수업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패널 토론', '찬반대립 토론', '피라미드 토론', '모의재판토론', '원탁 토론' 등 다양한 수업기법이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대표적인 토론수업 기법으로 제시된 것은 패널 토론. 학생들 가운데 대표를 선발해 어떤 문제에 대하여 토론을 시킨 다음, 청중이 질문이나 의견을 발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회의처럼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많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찬반대립 토론은 학생들이 비교적 쉽게 참여할 수 있어 초등학교에서도 많이 활용되는 방식이다. 교사가 논제를 던져주면 찬성측, 반대측으로 나뉘어 주장을 펼치고 작전 시간을 준 뒤 반론 펴기, 재반론을 통한 반론 꺾기 등을 연습할 수 있다.

놀이처럼 즐기는 토론 방식도 있다. 피라미드 토론은 모든 학생들이 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5가지 적게 한 뒤 임의의 두 학생이 만나 10가지 생각을 5가지로 줄이고, 또 임의의 네 사람이 만나 10가지 생각을 다시 5가지로 줄이면서 학급 전체가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이다. 모의재판 토론은 학생들이 검사와 변호사로 역할을 나눠 보는 기법이다.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이나 상대편을 고소하는 글을 미리 준비한 뒤 예상 질문과 답변서를 갖고 토론을 벌인 다음 최종 변론을 펼치는 방식이다.

김택신 서울 휘봉초 교사는 "대입논술이 뜨니까 초등학생까지 논술, 토론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라며 "논술은 평가의 한 방법이고 토론은 사고과정이기 때문에 토론은 고차원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자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 초등학생, 토론 잘하는 요령

1. 정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간결하게 표현한다.

2. 무엇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지 주제, 목표 등을 분명히 알게 한다.

3. 항상 이유를 함께 말한다.

4.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 말한다.

5. '예를 들면', '이런 경우도 있어요' 등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을 아우르는 표현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6. 아무리 엉뚱한 말이라도 끝까지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7. 친구들 앞에서 전체를 향해 발표하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

8. 자신이 할 말은 반드시 본인 스스로 준비한다.

9. 잘 듣는 것이 우선이다. 정확하게 듣기,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듣기, 6하 원칙에 의해 듣기 등을 연습하자.

도움말-서울 휘봉초 김택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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