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작년 6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4차 세계미세재건수술 학회가 열렸다. 매 3년마다 열리는 미세수술 분야 학회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미세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필자로서는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의무감으로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출국했다. 학회 일정 중, 아테네 시티 투어가 있어 유적지와 명승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테네의 남쪽에 위치한 헬리니코 올림픽 종합경기장을 잠깐 방문했다. 지난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경기 중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여자 핸드볼 경기 결승전이 개최되었던 바로 그 곳이었다.

비인기 종목으로 국민의 관심이나 사랑도 크게 받지 못한 채로 최선을 다해 체력의 열세와 유럽의 텃세를 극복하려 했던 결승전은 바로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자체였다. 세계 최강 덴마크를 맞이하여 열아홉 번의 동점, 두 번의 연장전, 그리고 마지막 승부던지기까지 우리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예상을 깨고 현재 200만 이상의 관객이 보았고 아마도 더 많은 관객들이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항상 일등만을 기억하고, 금메달만 조명을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있는 은메달에 대한 재평가를 하는 것은 무모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비록 결과는 은메달이었지만 땀을 흘리면서 같이 훈련하고, 동료애로 힘을 모았던 순간들, 목표를 정해놓고 함께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그 과정들이 금메달보다 더 값지게 여겨지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과연 '나의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과거의 많은 날들 중 어느 한 순간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한다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많은 날들이 너무 힘들고 비관적일 것이다.

바야흐로 입시와 고시, 졸업의 시즌이다. 한 문제 때문에 등급이 바뀌어져 지원하는 대학이 달라지고 인생이 바뀌어진다고도 하고, 몇 년을 준비한 고시에서 실패와 좌절을 느낄 수도 있다.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실패에 굴하지도 않으며, 지금 최선을 다하면서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진다면 우리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은 꼭 올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주말 저녁, 오래간만에 응급수술도 잠시 잊고 환자와 새로운 논문에 대한 생각도 뒤로한 채 사랑하는 두 딸과 함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고 있었던 그 시간들도 또 하나의 생애 최고의 한 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우상현 수부외과 세부전문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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