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민족 다문화 사회]이(李) 제임스 에드워드 쇼부(46) 씨-인터뷰

"영어 한마디 몰라도 먹고 살기 위해서 밤새 팝송 외웠습니다"

"성(姓)은 어머니를 따랐고, 이름은 아버지로부터 받았죠." 이(李) 제임스 에드워드 쇼부(46). 주민등록증에 새겨진 그의 이름이다.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이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피부색은 늘 시선을 끌었고, 놀림감이 됐다. 아이 둘을 둔 아버지가 된 지금도 사람들은 그를 보자마자 반말부터 해댄다.

"아예 예의라는 것은 없죠. 무시해도 되는 존재처럼 대해요."

그때마다 화가 치밀지만 그냥 웃어넘긴다. 살아오면서 터득한 처세술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만 놀았다. 똑같이 보이기 위해 '김근호'라는 가명을 쓰고 다녔지만 끼워주는 데는 없었다.

동네 형들이 달려와 마구 때리기 일쑤였다. 아픔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들이 내뱉는 말이 송곳처럼 그의 가슴을 찔렀다. "깜둥이 주제에…" 어머니에게 일러봤지만 어머니는 눈물만 흘렸다. 그 후론 다시는 어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다.

남과 다르게 낳아준 부모. 원망도 해봤다. 아버지의 나라(미국)로 가려고 영어공부도 해봤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아버지는 1961년에 홀로 미국으로 가셨지만 돌아가실 때(68년)까지 매달 생활비와 편지를 부쳐왔어요. 우릴 버린 건 아니었죠."

초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는 '단군의 자손', '단일민족'을 강조했다.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친구들은 그를 쳐다봤다. 그때마다 '나는 누구인가.'를 고개를 숙인 채 수십 번 되뇌었다. 그래도 '축구'와 '노래'는 커다란 위안이 됐다. 초교 5학년 때부터 시작한 축구는 그를 사회와 연결시켜준 유일한 끈이었다. 공을 찰 때면 외롭지 않았고, 친구들도 생겼다. 그리고 노래는 그의 생계수단이었다. 고교 중퇴자가 일할 곳은 없었다. 갈 곳은 밤무대뿐. 선천적인 자질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클럽에서 외국인 가수가 인기가 있었어요." 영어 한마디 모르는 그가 무대에서 팝송을 부르려면 밤새 가사를 외워야했다. 업주는 손님들에게 시카고에서 온 가수라고 소개하며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연예인 축구팀에서 활약하는 그는 축구로 맺은 인맥과 노래실력으로 음반을 준비 중이다. 최고의 가수가 돼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그는 자신의 고통을 자식들이 되물림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강제로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피부색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문득 '나는 좀 다르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아직도 외롭다고 했다. 그는 '혼혈인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최두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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