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소나무/조용미

나무가 우레를 먹었다

우레를 먹은 나무는 암자의 산신각 앞에 바위 위에 외로 서 있다

암자는 구름 위에 있다

우레를 먹은 그 나무는 소나무다

번개가 소나무를 휘감으며 내려쳤으나

나무는 부러지는 대신

번개를 삼켜버렸다

칼자국이 지나간 검객의 얼굴처럼

비스듬히

소나무의 몸에 긴 흉터가 새겨졌다

소나무는 흉터를 꽉 물고 있다

흉터는 도망가지도 없어지지도 못한다

흉터가 더 푸르다

우레를 꿀컥 삼켜 소화시켜버린 목울대가

툭 불거져나와 구불구불한

저 소나무는

매 시행 앞에 단어가 반복되는 독특한 형식의 시. 시인이 강조하여 말하길, 소나무가 유난히 구불구불한 까닭은 우레를 삼켰기 때문이라고. 우레를 먹고 용이 되어 승천하기 위해서라고. 그래서 합천 묘산의 그 늙은 소나무 껍질이 용 비늘을 닮았었구나. 용이 승천하기 위해선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터. 캄캄한 밤 천둥 번개 내려쳐 만상이 숨죽이고 엎드려 있을 때, 높은 바위 위에 외로 서서 소나무는 태양보다 뜨거운 낙뢰를 받아 삼켰으리라.

생각건대 이 나무는 경남 산청에 있는 정취암 산신각 앞 소나무가 아닐까 싶다. 목울대에서 허리 아래까지 길게 둘러가며 띠처럼 벼락무늬를 새긴 그 나무. 우리 동네 목욕탕에도 온몸에 용 문신을 띠처럼 두른 건달이 자주 들락거린다. 그런데 숱한 칼자국 숨긴 그 문신보다 작은 흉터 하나 없이 한평생을 보낸 노인의 흰 몸이 더 징그러운 건 무슨 까닭일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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