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달라지겠어요? 피부색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차별하지 말자'고 우리가 떠들어대고 있지만 정작 혼혈인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거들떠도 안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악수를 권하는 것도 싫고, 욕하던 사람들이 표정을 미소를 보내는 것도 왠지 어색하기만하다.
그들은 묻는다. "진심입니까?"
◆버려진 혼혈인 1세대
최근들어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우리는 동남아 이주여성과 결혼하는 농촌 총각이 급증하고 그 2세들이 성장하면서 '대안'을 마련해야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혼혈인을 '다문화가정 2세'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얼마전이다. 그러나 전쟁 이후 주한미군과 한국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1세대들은 이런 '호칭'이 낯설기만 하다.
혼혈인 A씨(51)는 "내이름은 '튀기'나 '잡종'이었다."고 했다. 현재 국내에 살고 있는 혼혈인 1세대는 5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많은 혼혈인 1세대가 미군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남은 혼혈인들은 방치됐지만 우리 사회의 포용력은 없었다. 정책은 입양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재외동포재단이 발행한 국외입양인 백서에 따르면 1955년부터 2005년까지 6천500여 명의 혼혈 아동들이 입양됐다. 국내에 남게 된 혼혈인 1세대. 그들은 50, 60년간을 우리 사회의 편견에 둘러싸여 노년을 맞고 있다.
◆피부색 다른게 죄인가요?
"한국에서 혼혈인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중죄를 지은 죄인보다 못한 삶이었죠." 흑인계 혼혈인 A씨(53)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때우고 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여지껏 떳떳한 직장을 가져보지도 못했다.
그가 엄마, 아빠를 찾았을 땐 어느 시골의 보육원에 맡겨진 뒤였다. 미군이던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를 버리고 돌아갔고, 어머니도 자신만 남긴 채 어디론가 가버린게 부모에 대한 기억 전부였다.
어렸을 적 또래 친구들은 그를 둘러싸고는 손가락질을 했다. 그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친구 엄마는 친구를 야단치며 데려가 버렸다. 그는 항상 외톨이었다.
"흰 우유를 마시고 이태리 타올로 얼굴을 힘껏 문질러 봤어요. 그렇게라도 하면 하얗게 되는 줄 알고…."
그들은 태어나 혼혈인이라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부터 우리의 사회, 제도에서 외면당해 왔다. 돈을 벌러온 외국인 취급받는 사회속에서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해왔다.
◆편견부터 거둬야
지난 2006년 말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미군관련 혼혈인 실태조사에는 그들의 힘겨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사 대상의 5%만이 친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에서 자랐을 뿐 나머지는 불안정한 성장기를 거쳤다. 47.5%는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17.8%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양부를 '아버지'라 부르며 자랐다.
많이 배울 수도 없었다. 이들의 교육기간(유치원 제외)은 평균 10.3년. 고교 1학년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중 46.9%는 중퇴 경력을 갖고 있었고, 3%는 아예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배우지 못한 탓에 37.6%는 직업조차 없었다. 사회적 편견에서 헤쳐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75.2%는 친구로부터 피부색이나 머리색 등으로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고, 43.6%는 학교 선생으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고 했다.
정윤정 펄벅재단 선임사회복지사는 "박일준, 인순이 등 연예계에서 성공한 혼혈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길 꺼린다."며 "우리가 다문화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범죄인 취급하는 듯한 시선부터 거둬야한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