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어 개혁 허와 실] (중)대학서도 안 되는 영어강의

'대학에서도 안 되는 영어 강의를 고등학교에서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울까?'

영어 교육의 강도를 공용화 수준까지 밀어붙일 듯하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비판 여론에 밀려 한걸음 물러섰다. 영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은 영어로 하는 수업을 도입하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지금의 학교 현실에서는 영어 수업조차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형편이다.

◆요즘 대학에서도?=초·중·고교에 앞서 영어로 하는 수업을 도입한 대학을 살펴보면 어려움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1995년 설립 당시부터 집중적인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해 온 포항 한동대. 전체 강좌의 22.8%를 영어로 수업한다. 모든 신입생은 2학년이 될 때까지 전공에 관계없이 '실무영어' 12학점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며 3, 4학년은 전공수업도 영어로 진행한다. 박혜경 한동대 기획처장(국제어문학부)은 "영어를 대학 내의 준공용어 수준으로 만든 덕분에 영어 강의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대학의 영어 강의는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영어 원서를 읽는 수준이거나 아예 영어회화 수업으로 변질되는 강의도 많다. 영어강의 비율을 높이라는 대학본부의 닦달에 젊은 교수들의 영어 강의 부담만 늘어난다는 불평도 높다.

지역 대학들이 지난해 12월 교육부에 보고한 영어강의 실태자료에 따르면 계명대가 전체 7천103개 강좌 가운데 2.51%인 178개 강좌를 외국어 전용으로 진행했을 뿐, 경북대는 전체 6천450개 강좌 중 55개(0.86%), 영남대 6천68개 강좌 중 114개(1.8%), 대구대 5천681개 중 51개(0.9%) 등 타 지역에 비해 영어 수업 강의 비율이 턱없이 모자랐다.

한 지역대 교수는 "수능시험에서 영어 1, 2등급을 받은 신입생조차도 영어로만 진행하는 수업에는 따라오지 못한다. 강의 내용이 전달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영어식 강의를 할 수 있는 교수 인력도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확보돼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고교에서 한다면?=고교에서 영어로 하는 수업이 진행될 경우 이보다 훨씬 더한 부작용을 예상할 수 있다.

최승환 대구 중등영어교육연구회 회장(대구외고 교장)은 "외국어고에서도 1, 2학년은 영어과목에만 한해 70~80%가량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3학년이 되면 독해 위주의 수능식 영어로 수업방식을 전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2000년 이후 영어 능력이 우수한 신규 교원들이 상당수 교단에 서고 있지만 여전히 영어 활용 능력이 우수한 교사가 태부족하다."고 말했다.

눈앞에 닥친 대학입시 대비에 학교의 힘을 모을 수밖에 없는 현실도 영어로 하는 수업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 고3 담당 교사는 "아무리 영어 과목의 비중이 높아진다고 해도 내신 대비와 수능시험, 논술 등을 한꺼번에 준비해야 하는 고교의 여건상 영어에 지나치게 교육력을 쏟기는 힘들다."며 "영어 실력에 자신이 없다며 다른 과목을 소홀히 하는 학생들을 독려할 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구의 한 영어전문학원 대표는 "사설학원의 경우 수준별 반편성, 소수 그룹식 수업, 원어민과 한국인 강사 동시 강의 등 철저히 수요자 중심으로 운영된다."며 "고교나 대학에서는 이런 여건을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리 국가적 관심을 쏟는다고 해도 한계가 분명하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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