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디자인 코리아

한 디자이너가 가끔씩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자신을 '예술가'라고 소개하고 교실 벽에 붙은 작품을 칭찬하면서 "이 교실 안에는 예술가가 몇 명쯤 있을까, 손 좀 들어 볼래"라고 물었다.

이때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의 경우 거의 모든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손을 높이 들었다. 2학년 교실에 가면 4분의 3 정도, 3학년에 가면 몇몇 아이들만 손을 든다는 것이다. 6학년 교실에 가면 아예 손을 드는 학생이 없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저 같은 반의 누가 손을 드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라고 한다. 예술적 감각이 나이가 들수록 둔감해지고 점차 쇠퇴해짐을 보여주는 유명한 얘기다.

1980년대 남북 상호교환 방문의 길이 열리고 북측의 고위당직자가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건물이 마치 성냥갑을 쌓아놓은 것 같다"고 평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서울의 발전상을 시샘하는 말로 여겨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뛰어난(?) 안목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개발과 성장 외길을 걸어온 한국사회는 디자인에 눈 돌릴 틈이 없었다. 디자인은 그저 예술의 한 분야로 취급당했다. 그러다 보니 건물을 지어도 특징이 없고 다리 하나를 놓아도 특색이 없다. 도시의 '스카이 라인'은 아예 기대할 수가 없다. 대구 신천을 가로지르는 교량들은 그저 밋밋하다. 오히려 일제강점기 때 놓았다는 아치형 '푸른 다리'가 더 돋보일 지경이니 이 얼마나 삭막한 도시인가. 이 시점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토 및 도시개발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공디자인 개념을 대폭 강화하는 '디자인 코리아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다가올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세계적 석학 다니엘 핑크는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미래 인재의 6가지 조건 중 '디자인'을 가장 먼저 꼽았다. 디자인은 이제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다. 영국 정부의 디자인 정책 고문인 존 헤스킷 홍콩 폴리테크대학 교수는 디자인을 "본질적으로 우리의 필요에 걸맞고, 우리 생활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주변 환경을 만들고 꾸미려는 인간 본성이다"고 정의한다.

디자인이 무시돼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모두는 '디자이너'가 돼야한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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