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수줍어하는 얼굴을 슬며시 내비친 두 아이는 눈을 이내 내리깔았다. 조금 전까지 신나게 놀던 기운이 방안 가득했지만 아이들은 묵묵했다. 두 아이의 엄마 강은희(가명·40) 씨와 말을 섞기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동그란 눈은 기자를 향했다. '뾰르르륵~' 약한 전기음이 귓가에 닿았다. "아이들 귀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요?"
#2."이게 금붕어고, 저건 자라야. 자라가 납작 엎드려 있네. 희정아, 저것 봐."
일주일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 1997년 8월 여름의 끝물. 달성공원 주변 인동촌시장 한모퉁이. 몇 마리의 금붕어와 자라가 있었는지 가물거린다. 강 씨는 돌이 갓 지난 딸 희정이에게 수족관 속을 보여주고 싶었다. 찰나의 순간, 자신과 딸아이에게 밀어닥치는 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의식을 되찾자 허겁지겁 딸아이부터 더듬었다. 천만다행으로 딸과 자신 모두 무사했다. 고맙게도 5개월째 뱃속에서 자라던 태아도 무사했다. '하늘이 도왔다'는 말이 절로 흘렀다. 자신과 딸을 친 트럭 운전사의 사연도 들었다. 술을 마시다 아들과 딸이 불러 급히 집으로 가던 아저씨란 걸. 뉴스에 나왔노라고 사람들이 말했다.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다.
#3."희정이가 말이 늦다고 생각했어요. '희정아'라고 불러도 한참 뒤에야 고개를 돌리더군요. 갑작스레 1년 전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더군요."
사고 이듬해, 강 씨 내외가 희정이의 아장대는 발걸음 하나에 하루의 피로를 씻을 때, 뒤이어 새식구가 된 영철이의 오물거리는 입모양에 새로운 희망을 꿈꿀 때였다. "희정이가 잘 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에 희정이를 병원에 데려갔던 강 씨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청각장애로 언어장애마저 안게 된다는 의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포기'란 말을 어린 핏덩이에게 넘길 순 없었어요. 남보다 조금 불편한 장애지만, 그것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때부터 강 씨는 희정이의 장애에 맞섰다. 미술치료와 언어치료를 병행했다. 그렇게 이어오던 노력도 잠시. 영철이가 희정이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걸 안 것은 오래지 않아서였다. 청각언어장애 중복 1급. 두 아이의 귀에는 보청기가 끼워졌다.
"10년째 치료를 받고 있어요. 청각언어장애로 말이 서툴긴 하지만 그 덕분인지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내곤 해요." 희정이와 영철이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작은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희정이는 귀걸이처럼 생긴 보청기를 달고 있었다. 아이들이 장애로 상처받지 않게끔 하려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이 때문에 빚도 졌다. 경제력이 부실한 전 남편 탓이기도 했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돌보느라 경제력을 포기한 자신의 탓이기도 했다는 강 씨.
"평생 보청기를 차야 할 인생일지라도 아이들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청각언어장애를 가진 두 아이의 엄마 앞에 '장애'는 그저 사전 속 단어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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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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