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회복 불능 두 환자의 상반된 모습

이번 주부터 임만빈 교수와 장성용 원장이 필진에 참여합니다. 임 교수는 대한뇌혈관외과학회장, 대한신경외과학회장을 지냈고,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 원장(장성용치과)은 대구치과의사회 법제이사, 대한치의학레이저학회 이사로 활동 중입니다.

입원 환자들의 치료에 대해 상의하고 토론하는 시간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27세 환자의 척추 MRI 사진이 화면에 비쳐진다. 흉추 열 번째 척추가 골절돼 뒤로 많이 밀려나 있다. 척수 신경이 완전히 차단돼 있다. 배꼽 밑으로는 모든 감각이 상실돼 있고 다리엔 움직임이 전혀 없다고 한다. 다량의 부신피질호르몬제를 투여했지만 전혀 호전이 없단다. 물끄러미 그 사진들을 바라본다. 27세의 청년, 아무리 우리가 그를 잘 치료해준다 하더라도 그는 다시 자기 발로 서서 걷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80년대 초에 보았던 한 환자가 기억된다. 농대 4학년이던 청년이 교통사고로 입원했었다. 지금 환자와 비슷했다. 흉추가 골절돼 양쪽 다리가 완전히 마비돼 있었다. 수술을 하고 치료를 했지만 하지마비는 호전되지 않았다. 환자는 미칠 듯이 고민했다. 그러다가 약 2달 뒤 노부모가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머리를 숙인 채 쓸쓸히 퇴원했다.

그 후 약 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가 갑자기 내 연구실로 찾아왔다.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어떤 젊은이가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하도 반가워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 가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밍크를 키우는 농장을 경영하며 잘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덧붙여 이야기했다. 퇴원한 뒤 한동안은 미칠 듯이 고민하면서 방안에만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제 두 다리가 마비되고 영구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그렇게 태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 갈 방도를 찾아 봐라.'고 한 내 말을 떠올렸단다. 그래서 밍크를 키우기 시작했단다. 다행히 성공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다. 사람도 고용해 휠체어를 밀게 하고 차도 운전하도록 한단다. 지금은 어느 곳이든 불편 없이 간단다. 살아가는데 불편이 없고 삶이 즐겁다고 하면서 감사하다고도 했다. 그리고는 '이제는 의학이 발달돼 자기 같은 사람도 치료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됐는지 알아보려고 방문했다.'고 말했다. 아직 그런 치료방법이 개발되지는 않았다고 대답하자 약간은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쾌활하게 "우리 농장에 한번 놀러 오세요. 밍크들이 무척 귀여워요."라고 말하곤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연구실을 나갔다.

그 당시 나는 또 다른 환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운동구점을 경영하던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술 먹고 집 발코니에서 떨어져 뇌를 다쳐 입원해 치료를 받은 환자였다. 목숨은 구했지만 왼손이 약간 마비돼 부자연스러웠다. 외래 진료 올 때마다 "왼손이 부자연스러워 운동구점 일을 도저히 하지 못하겠다."고 호소하곤 했다. 어느 날 그가 하도 딱해서 "왼손이 완전히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다. 왼손이 완전히 회복된 다음 운동구점을 잘 운영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상태에서 어떻게 잘 운영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라."고 말해줬다. 그는 진찰실 문을 꽝 닫고 나가버렸다. 그 후에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없다.

지금 입원해 있는 청년도 다시는 두 다리로 서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가면서 무척 고민하고 방황할 것이다. 만약 그가 앞에 언급한 대학생같이 빨리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살아갈 방도를 일찍 찾으려 노력한다면 고민과 방황의 기간은 짧게 끝날 것이다. 그러나 뒤의 환자처럼 자신이 옛날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면 그 기간은 일생동안 지속될 것이다.

삶도 똑같은 것이 아닐까?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빨리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방도를 찾는 것이, 어려움이 다가오기 전의 삶만을 그리워하는 것보다는 현명하지 않을까?

임만빈(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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