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동치는 증시…파랗게 질린 개미들

회사원 A씨는 30일 아침을 기분좋게 시작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종목 3개가 모두 빨간침을 쏘아올리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A씨는 점심을 먹고 들어오던 중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가 눈이 뒤집어졌다. 아침에 '빨갰던' 3종목 모두 '파랗게' 변해있었던 것이다. 코스피·코스닥 지수는 아침엔 새빨갰는데 오후엔 새파랬다. 지난해 초여름, 주식시장이 한창 뜰때 들어갔다가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A씨는 이날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코스피지수가 1,500대로 주저앉은 30일 오후,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상승장이 하락장으로 돌아서더니 코스피지수는 무려 48.85포인트나 빠졌다.

"아직 '펀드런(펀드의 대량 환매)'은 없다.'던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펀드런' 정도는 아니지만 이날 대구시내 증권사·은행마다 펀드 환매가 적잖게 이어졌다. 직접 투자를 했거나 펀드에 돈을 넣어둔 개미들은 하루 종일 허둥댔다. 도무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장 상황 때문. 개미굴에 대혼란이 시작됐다.

◆망연자실, 갈팡질팡

30일 오후. 대구시내 각 증권사는 물론, 은행 각 지점 직원들과 대화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들의 책상위에 놓인 전화는 정신없이 울어댔다. 전화를 받는 도중에는 어김없이 휴대전화가 소리를 냈다. "손절매(손해를 보고 주식을 팔아버리는 것)를 해야할까요?" "원금을 깨먹었지만 지금이라도 펀드를 환매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금융회사 직원들은 전화 응대를 하느라 점심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특히 펀드 편입 비중이 높은 조선·해운 등 중국 관련주들에 대한 투매 양상이 나타나면서 30일 이들 종목이 일제히 하한가 가까이 내려꽂히자 펀드에 돈을 넣어둔 개미들이 가장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날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의 한 증권사 지점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펀드가 좋다고 해서 지난 가을 은행 정기예금에서 돈을 빼 넣어놨는데 벌써 원금의 20%가 날아갔다."며 "펀드는 장기투자라고 해서 몇달을 기다려봤는데 이달 들어서는 원금 날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더 나빠지기만 한다."고 했다.

국내주식형펀드는 이달 들어서만(25일 기준) 평균 -12.15%의 수익률을 나타내면서 상당수 투자자들이 원금을 깨먹은 상태다. 국내주식형펀드는 지난해말 기준으로 최근 3년간 수익률이 131.31%에 이르렀으나 올들어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내려앉으면서 '3년 호황이 끝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증시, 허약체질로 변했나?

아침에 상승장으로 출발했다가 오후에 뒤집어진 날은 올해 들어서만 벌써 5번이었다. 지난 8일과 10일, 11일, 15일에 이어 30일까지. 11일엔 코스피지수가 42.51포인트나 빠졌고, 30일엔 이보다 더 많이 빠졌다.

장병화 CJ투자증권 대구지점장은 "30일 외국인들은 불과 129억 원의 순매도 금액을 기록, 올들어 가장 적게 주식을 내다팔았지만 코스피지수의 하락율은 2.98%에 이르면서 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며 "시장을 받쳐줄 주체가 사라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그만큼 우리 증시가 건강성을 잃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날 개인은 928억 원어치를 순매도했고, 기관은 2천억 원의 프로그램 순매수가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29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는데 그쳤다. 주식을 사는 사람이 귀해진 것이다.

더욱이 우리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이름을 떨쳐온 미래에셋이 보유종목들을 처분하고 있다는 우려감과 함께 지난해 장세를 이끌었던 조선·해운·기계 등의 이익증가세가 정체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매물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이 실물까지 뒤흔드나?

30일 증시 대폭락으로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5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코스닥지수는 더 빠져 지난해 2월 수준과 비슷하게 내려갔다. 지수가 급락하면서 30일 유가증권시장(799조2천371억 원)과 코스닥시장(86조8천41억 원)을 합친 시가총액은 886조412억 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165조 원 이상 줄었다.

이병천 미래에셋증권 대구 범어지점장은 "30일 소액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환매가 상당히 있었다."며 "소액 투자자들 중 시장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대구시내 펀드 판매시장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대구은행에는 이날 70억 원 정도의 펀드 환매가 있었다. 평소 수준(50~60억 원)보다 다소 많은 액수. 원금을 까먹고 물러서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창집 한국투자증권 대구지점장은 "증시의 불안은 부(富)의 감소효과를 가져와 사람들의 씀씀이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증시가 나빠지는 바람에 설경기가 훨씬 나쁘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고 걱정했다.

류창곤 굿모닝신한증권 대구지점장은 "한마디로 시장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며 "주식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장기 이동평균선'이 모두 깨져버려 저점을 알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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