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당선인의 전봇대

구름 위를 걷다. 담배 이름이 아니다. 취임 한 달을 채 못 남겨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의 지금 행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전국 대부분의 신문들은 물론, 대선 투표일 직전까지 이명박 후보 흠집 내기에 시간이 부족했던 일부 공중파 TV들조차 행여 뒤처질세라 '이비어천가' 부르기에 침을 튀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스스로도 토로했듯 그에게 거는 국민적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다.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른다는 소식에 필자가 일부러 찾아가 본 청계천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육교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횡단보도 하나 긋는 데도 관계자들의 이해가 서로 달라 도무지 시원한 꼴을 보지 못한 대구시민으로서는 지금 물이 흐르고 있는 청계천이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었고 그 위로 고가도로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청계천에 물을 흐르게 만든 것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었다. 청계천 건설 이전에 그는 벌써 성공한 CEO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선택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 준 셈이다.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그 여세를 몰아 국정 전반을 청계천처럼 뜯어고치려 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하나하나 열거하기만 해도 책이 될 만큼의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또 수정되고 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한다며 통일부와 여성부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안에서부터 영어공교육 강화방안, 수능등급제 폐지 등 대학입시제도, 대북정책, 시'도 단위 광역경제권 재편계획, 휴대전화 요금문제, 공항귀빈실 이용문제 등등.

지금 내놓는 정책들 중에는 지금 해야 할 것과 건드려서는 안 될 일이 있으며 모두가 국민적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야당을 정책동반자로 껴안고 해결해야 할 일이다. 영어 공교육 방안은 국민을 상대로 몇 번이고 설득을 거쳐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과의 대화를 위원장의 경찰 출석 협상을 이유로 거부한 것은 또 다른 빌미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어른스럽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수위원장이 영어공청회에서 한 영어표기법 발언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것은 오만이거나 과욕이다. 또 과정을 무시하고 청계천 식 밀어붙이기로 일관한다면 취임 이후에도 대통령 자신을 국민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대통령 취임도 하기 전에 발목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이 당선인은 기업인으로, 정치인으로 성공한 그의 자만이 마음속 전봇대로 커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 당선인의 한 마디는 5년 동안 꿈쩍 않던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5시간 만에 뽑게 만들었다. 지금 이 당선인과 인수위원회는 우리 사회 곳곳의 전봇대를 찾고 있으나 정작 자신들이 새 전봇대를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이 당선인의 인기가 치솟고 인수위원회가 국민의 69.6%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언제까지나 지지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도 5년 전 48.9%의 지지율로 당선됐고 92.7%의 국민이 '국정운영을 잘할 것'(당시 국정홍보처 조사)이란 취임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당선인을 지지해 준 대부분의 표 성향이 기득권층이라는 사실은 선거 이후 많은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부자는 로또 복권을 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에서는 위험을 기피하는 것이 보수층이라는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들이 누구보다 변화를 싫어하고 무엇보다 손해를 싫어하는 이해타산에 밝은 집단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수많은 정책 결정 과정들이 증명해 준다. 이들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이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전봇대부터 뽑아야 한다. 취임하기 전 퇴임시를 걱정한 이 당선인 아닌가.

이경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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