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유정의 사랑한다면 이 영화를]뜨거운 것이 좋아

여자가 거부할 수 없는 또 다른 '욕망'

여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정희의 소설'옛 우물'을 보면, 45번째 생일을 맞는 여성이 등장한다. 여자는 거울을 바라보며 이제는 죽고 없는 옛 애인을 생각하기도 하고, 당상관 3명에 바보 8명이 태어났다는 당상관 집을 오가기도 한다.

남편이 변을 본 뒤 물을 내리지 않은 변기 속에 우두커니 놓여 있는 똥, 여자는 그 똥이 너무도 낯설고 서글프다고 느낀다.

45번째 생일을 맞은 이 여자는 자신의 여성과 결별하고 있다. 그녀가 결별하는 여성은 젖꼭지에 매달리는 아이를 뿌리치고 애인을 만나러 달려가는 열정이며, 거즈 위로 범벅이 된 젖과 피를 보면서도 욕망에 몸이 뜨거워지던 젊음이다.

마흔 다섯, 폐경이 가까워진 그녀는 몸으로 부딪치는 욕망과 열정이 아닌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옛 이야기 속 전해져 오는 금빛잉어의 전설처럼 그렇게 도도히 유전되는 생명력을 말이다.

폐경기 그리고 폐경 이후의 여성, 그리고 그들의 욕망은 젊은 여성의 것과 조금은 다르게 묘사된다.

'마더'라는 작품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60이 넘은 여성이 남편의 사별 후 겪게되는 격정적 육체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딸 아이가 좋아하는 남자의 몸에 반하게 된 엄마, 그녀의 욕망은'엄마'라는 이름과 함께 이중의 단속을 받게 된다. 결국 그녀는 남자에게도 딸에게도 버림을 받고 홀로 길을 떠나게 된다.

엄마에게는 욕망이 허용될 수 없다. 누구나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지만 그것은 수학처럼 원리원칙일 뿐이다. 부모의 섹스는 머리로는 이해가지만 결코 목도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다.

'마더'의 어머니는 딸아이가 가진 관습적 기대를 모두 저버린다. 그녀에게도 욕망이 있지만 사회는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권칠인 감독의'뜨거운 것이 좋아'에는 40살에 갑작스레 폐경을 맞은 여자가 등장한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무대감독인 그녀는 거칠 것 없는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일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게다가 꽤 넉넉한 재산까지 갖춘 그녀는 어느 것에도 빠질 것 없다. 15살 이상의 연하 남자를 애인으로 받아들이고, 쿨하게 "우리 내일 부터는 쌩까자."라고 말하는 멋진 여자.

그런데 여자가 폐경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달라진다. 쿨함은 히스테리로 달라지고, 자신감은 가시 돋힌 독설로 바뀐다.

여자는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욕망하는 여성으로서의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수치심으로 여자는 날카로워져만 간다.

'뜨거운 것이 좋아'의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 다시 찾아온 경혈을 보며 뛸 듯이 좋아한다. 하지만 여자의 난자 500개,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뚝 끊길 날이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폐경이 무엇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박탈감·우울함 등이 연쇄적으로 따라온다지만 그것도 아직은 죽음의 세계만큼 묘연하다. 하지만, 폐경 이후의 삶에는 또 다른 욕망이 있으리라. 오정희가 말한 그 금빛잉어처럼 신비하고 찬란한.

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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