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회오리바람이 동굴 속으로 층층이 몰려들었다. 역한 화약 냄새에 병사들이 기침을 토해냈다. 동굴 바깥에서 이글거리는 저주의 화염을 보지 않으려고 아예 두 눈을 꽉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것이 평평하게 뉘어져 있었다. 샅샅이 파헤쳐진 땅과 잘게 부서진 바위들. 나무들이 불길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었으나 아무도 그들의 아픔조차 돌봐 줄 수 없었다."
사람은 물론 온 산하대지가 완전히 영혼을 잃어버린 폐허가 되는 것. 그것이 전쟁의 얼굴이다. 이 책은 베트남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이의 생생한 증언이다. 이 전쟁에서 베트남인 300만 명이 죽고 450만 명이 부상 당했으며 지금도 200만 명의 고엽제 환자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도 고교를 마치고 자원입대 했는데, 300명의 입대 동기 중 살아남은 자는 그를 포함해 다섯 명뿐이었다니 전쟁의 참혹함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미군의 총을 맞은 빈 상사가 황천강 주변을 떠도는 장면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육신은 죽고 영혼만 남아 이승과 저승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단지 배불리 먹을 밥 한 그릇과 소박한 옷가지 하나를 바라며 평생을 살아온 고향 사람들', 그리고 생사를 함께 하던 전우들을 떠올리면서. 글은 마치 전쟁이라는 괴물이 한 인간의 가슴에 선명하게 찍어 놓은 발자국 같다. 화염과 악몽 그리고 비애가 피처럼 묻어 있는 발자국.
'벌레 같은 수난'을 사람들에게 안겨줄 뿐인 전쟁은, '도살자를 영웅으로, 사기꾼을 위대한 인물로, 지식인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모든 기반을 뒤엎고, 모든 진보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모든 성과물을 완전히 깔아 뭉개버리는 전쟁은', 대체 누가, 왜 일으키는가?
무고한 생명들을 무차별적으로, 그것도 '당당하게' 살육한다는 것! 인류 사회가 어떻게 아직까지 그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일까?
죄라곤 지어 본 적도 없는 순수한 젊은이들에게 무기를 들려 전쟁터로 보내는 건 어쨌든 야수가 되라는 주문이 아닌가? '왜?'라는 물음조차 없이, 그 야만의 짓에 왜 다들 말없이 복종하거나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베트남 전쟁에는 '따이한'이, 이라크 전쟁에는 '자이툰'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는 침략자의 편에 서서 무엇을 했으며, 지금도 무얼하고 있는 걸까? 맹수의 먹이 사냥에 들러리라도 서야한단 말인가?
'국익'이라는 그 달콤하면서도 해괴한 논리의 이면은 무엇인가? 사자가 물어뜯어 놓은 약한 짐승의 피묻은 살점, 그것이나마 노려보려는 하이에나의 심보가 혹시 국익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그 어떤 이유에서든 '집단 강도 살인'짓에 다름 아닌 전쟁을 인간의 세상에서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방법,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인류의 이름으로 응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인터넷이 세계인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도 있다는데, 함께 노력해보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리하면 언젠가 세상의 모든 군인들이 "이제 이 따윈 필요없어!" 하면서 일시에 총을 내던지는 '통쾌한 사태'를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철없는 이상주의자의 가망 없는 꿈일까?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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