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여행]섣달 그믐날

귀신 쫓아낸다는 폭음탄 소리로 설 맞아

"자지 마라, 자면 소 된데이." 짓궂기로 소문난 형이 잠을 못 자게 한다. 빨리 자야 때때옷입고 세배도 하러 갈텐데. 섣달 그믐날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나 어쩐다나. 게다가 소가 된다나? 조금은 영악해서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안중에 없지만 눈꺼풀이 감겨지는 데 어찌 이겨낼 건가.

"히야, 나는 눈썹이 하얀 도사님이 될끼다. 자고 일나거등 내보고 도사님이라고 불러래이!"

"네, 도사님. 안녕히 주무세요. 니 자면 수정과 묵고 곶감 묵고 다 물낀데."

저녁에 남은 찬밥, 반찬 다 긁어서 비빔밥 만들어 먹고 배가 불뚝하지만 수정과에 곶감까지.... 군침이 맴돈다. 그것도 잠시.... 언제 잠든지 모르게 그렇게 새 날은 잠과 함께 찾아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형은 눈썹을 하얀 도사님으로 만들어주진 않았다.

새벽닭이 홰를 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 보면 대문이 활짝 열려있고 '포마드' 기름에다 빗질 해놓은 듯 마당이 말끔히 쓸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마당 한켠에서 쑥불을 놓고 계셨다. 주춧돌마다 매캐한 쑥불을 얹을 모양이다. 온갖 잡귀와 삿된 것이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란다.

지난 그믐밤 초저녁엔 논두렁에서 폭죽 쏜 생각이 아직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귀신들이 폭죽소리를 듣고 도망을 친다는 소리에 신나게 귀신을 쫓으며 폭죽을 쏘았다. 폭음탄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새끼 손가락 모양의 폭죽에서부터 기다란 로켓 모양의 폭죽도 쏘았다. 폭음탄으로 동네 누나들을 골탕 먹인 고소한 생각도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얄미운 붙들이를 놀려 준 것이 너무 고소하다. 한 녀석이 붙들이 집에서 '붙들아, 선물 주께.' 하고는 불러내어 불 붙인 폭음탄을 붙들이 발 아래에 집어 던지면 붙들이는 '엄마야!'를 외치면서 기겁을 하고 집으로 내빼는 뒷모습이 너무나 고소했다. 붙들이를 폭음탄으로 골탕 먹인 까닭은 일전에 팥 시루떡을 갖고 와서 주지도 않을 걸 우리한테 약 올린 죗값을 치룬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 폭음탄 소리나 제야의 종소리가 모두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마당으로 내려와 펌프질로 세숫대야에 차디찬 얼음물을 붓고 콧잔등만 몇 번 부비고서는 새 옷을 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옷이 날개라 했나? 모두들 훤칠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변신해 있었다. 막내는 치마 저고리에 복주머니를 크게 달았다. 속셈이 빤히 보였다. 돈을 제일 밝히는 막내였다. 아마 막내라서 세뱃돈이 제일 적기 때문에 더 욕심을 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받을 땐 수북하게 돈이 있지만 하루 지나면 막내의 수중엔 겨우 십 원짜리 몇 개 주어지는 게 고작이다. 학교 가면 가방 사준다며 엄마가 이자 없는 마을금고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굵어지면 하나 좋은 게 제 세뱃돈은 제가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부모님께 세배하면서부터 우리의 세뱃돈 카운트는 시작되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찾아간 큰집에서부터 육촌, 팔촌 아재들 하며 아침나절 동안 수금 행각이 벌어지고 나서 햇빛 가득한 골목 귀퉁이에서 세뱃돈을 침 발라 가며 세기 시작했다. 작년보다 더 많은 세뱃돈에 괜시리 우쭐해졌다. 읍내 나가서 영화 구경도 가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주전부리도 문제없다. 세뱃돈은 가난한 우리들을 부자로 만들어 준 완벽한 재테크였다. 하지만 훗날 세뱃돈의 허구를 안 것은 어른이 되어서였다. 결국 그 세뱃돈은 우리 엄마, 아버지의 돈이란 걸....

올해에도 어김없이 설 명절이 되었지만 고향엘 가고 싶어도 못가는 새터민들의 쓸쓸한 명절을 위로해주는 행사가 대구에서 열린다. C&우방랜드에서는 북한 출신 예능인들로 구성된 평양민속예술단 공연이 마련된다. '휘파람', '다시 만나요' 등의 북한 가요와 '물동이춤', '조개춤', '단오명절 군무' 등이 선보인다. 이외에도 퓨전국악한마당, 민속놀이한마당, 무자년한가족 큰잔치가 열릴 예정이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의 좋은 명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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