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 이곳]"고향 청도, 부끄럽지만 다시 일어서고 싶습니다"

20대 청도 사람의 편지

20대의 청도 군민입니다. 대학 공부 때문에 대구에서 잠시 산 적은 있지만 몸과 마음은 늘 넉넉한 인정이 넘치는 청도를 향해 있었습니다. 지금 부모님댁에 내려와 먹먹한 마음 가눌길 없어 글을 씁니다.

우선 절절한 반성이 앞섭니다. 저는 제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이제껏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참으로 무심했습니다. 여지껏 청도군수 이름도 몰랐고, 경북도지사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멍충이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대구 친구들과 함께, 같은 책을 읽으며 나름 열심히 살고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헛똑똑이였던 것입니다. 지금껏 내리 네 차례 보궐선거가 있었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내심 고향 청도를 제 삶의 터전으로 삼아 앞으로 쭉 살아가리라곤 생각을 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저 '저의 청도'는 여행잡지 속에 나오는 '산 좋고 물 좋은' 그런 청도였지, 다시 돌아와 살고픈 그런 곳은 아니었나 봅니다.

여기선 제가 딱히 할 일도 없을 뿐더러 부모님의 바람 또한 줄곳 그러하셨으니까요. 인근 도시에서 언제 짤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같은 비정규직으로 이리 저리 치이고 스트레스 받으며 살더라도 이 '후진' 데는 절대로 내려오지 말자고, 그렇게 제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왔나 봅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저는 갖은 핑계를 일삼으며 지금껏 지방 선거에도 한번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어 이런 부끄러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부터입니다. 오늘 이른 아침, 전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섰습니다. 찬 새벽공기 마시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마을 어귀에 현수막이 펄럭입니다. "부자 청도, 확실히 만들겠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아니 저 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부자'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나요? 우리가 언제부터 돈 몇 푼이 아쉬워 우리의 선한 양심과 자존심을 도매금으로 넘겨버렸나요? 혹자는 그러겠지요, 이건 비단 너희 동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 '기업하기 좋은 곳', '비지니스 프렌드리' 등등의 구호들이 사방에서 난무하고 있지 않느냐고. 거스를수 없는 시대의 조류라고. 하지만, 저는 완전 '거꾸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몇살 되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적 동네친구들과 망둥이처럼 마을 골목을 촐싹맞게 뛰어 다니던 그때가 전 부쩍 그립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동네에서 문을 여는 부동산 가게를 바라볼 때마다, '청도 땅 매매' 광고를 접할 때마다, 그런 그리움은 점점 더해갑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친구들과 함께 냉큼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때는 땅 문제로 형제간에 의가 상하는 일도 없었고, 골프장이니 뭐니하는 각종 개발로 아름다운 마을 여기 저기 뒤집히고 산천이 볼썽사납게 할퀴어지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그때는 지금처럼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죄인처럼 머리를 수그리고 경찰서 바닥에 쪼그려 모여 앉아있지도 않았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엄마 따라 일터인 논두렁과 능금밭을 오가며 마주치는 마을의 어르신들께 안녕하세요 인사 드리면 그분들은 제게 '인사성이 참 바르구나' 하시며 저희집 안부를 물어 주셨던 기억이. 초등학교때는 '애향단'이란 것이 있어서 일요일 아침 일곱시면 반별로 모여 동네 언니오빠들을 따라 옆 동곡2리까지 쓰레기를 줍고, 6학년 언니의 구령에 맞쳐 다리 밑에서 국민체조 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던 기억이. 요즘 중앙언론, 지역언론 할 것 없이 전국 모든 언론사에서 '청도 보궐 선거'를 다룬 기사를 접할 때마다, '청도 재선 괴담'이라는 이 망측하고도 몹쓸 막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대는 분들을 만날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낍니다. 내일 또 어디서건 "청도 군민 무더기 자수" 운운 하는 기사를 보게 된다면 정말 홧병이 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감히 그럴 자격이 없고 그렇게 떳떳한 처지도 아니란 걸 잘 알지만….

군 전체가 완전 초상집 분위기이고 흉흉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그저 어리숙한 무지랭이들만 모여 사는 별 볼 일 없는 지역의 한 가십으로 치부해 버리려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어느 누구를 탓하기 전에, 청도에서 일어난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알 될 것은 바로 이것이라구요.

이는, 우리 각자가 지역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서로 힘을 모아 현명하게 풀어 나가야 할 '풀뿌리 민주주의' 문제이지 않느냐고.

말로는 "내 고향, 내 고향"했었지만 도대체 우리는 우리들 각자의 고향을 위해 그리고 지역을 위해 과연 무엇을 했던가요? 차마 고개 들지 못하게 하는 이 부끄러움들을 잘 담금질하여 당장 오늘부터라도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향해 야무지게 풀무질 해 나가야 겠다고 저부터가 굳게 다짐합니다. 혹, 전국에 저와 생각을 같이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지현(청도 금천면 동곡 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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