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피아노와 가족문화

한때 피아노는 전축과 더불어 서민가정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사치품이자 우아한 장식품 노릇을 톡톡히 했다. 피아노와 전축은 거실을 꾸미는 격조 높은 가구이자 그 집의 문화적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아빠들은 딸내미들이 자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기초적인 교본을 마칠 무렵이 되면, 기꺼이 허리띠를 졸라 피아노를 사주고 그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피아노는 아이 키우는 집의 필수품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자녀들이 뽐내는 피아노 솜씨나 노래 솜씨에 행복해하며 박수를 치는 모습은 문화가정의 모범적인 풍경이었다.

한데 이제 갈수록 집안에 피아노를 들여놓으려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경기부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동성로 곳곳에 경쟁적으로 들어서있던 피아노 대리점이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거리에는 중고피아노를 사고판다는 현수막 광고들이 부쩍 눈에 띈다. 시대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는 탓일까. 직접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것에는 지출을 줄이겠다는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이제 대부분 가정에서는 오래된 피아노를 팔아 그것으로 새 컴퓨터를 장만하고, 아이들은 여가 시간에 피아노보다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게임이나 인터넷 채팅에 열중한다. 주거 패턴이 바뀐 탓도 있지만 장미넝쿨 흐드러진 골목길 담벼락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나 '소녀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느라 걸음을 멈출 일은 더 이상 없어져 버렸다.

점차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것보다' 실용적'인 것들이 우리 삶을 지배해 가는 것 같다. 사는 일이 각박해졌다는 뜻도 되고, 서로 바빠 함께 모여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를 만한 시간이 없어졌다는 뜻도 되겠다. 또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고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문화콤플렉스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러고 보면 TV의 많고 많은 노래자랑 프로그램에서도 가족끼리 출연하는 프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렸다. 바쁜 삶뿐 아니라 컴퓨터를 비롯한 MP3 같은 디지털 기기들이 피아노의 역할을 일부분 대신하면서 함께 노래 부르고 함께하던 사소한 문화조차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건너가 버린 탓이다. 바쁜 삶과 기술 발달이 삶의 패턴을 바꾸고 가족 관계마저 단절시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피아노를 둘러싸고 노래하던 소박한 가정의 저녁 풍경이 새삼 그리워진다.

서영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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