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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예술을 탐하다] ⑤도광의 시인의 소주잔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주잔의 크기는 높이 5.2cm, 윗지름 5.8 cm, 밑지름 4cm이다. 넘칠 만큼 채워도 52∼55㎖쯤 되는 좁은 공간이다.

이 작은 소주잔 안에 얼마나 넓은 세상, 얼마나 많은 사연이 숨어 있을까. 성질 사나운 사내는 잔을 비우고 욕지거리를 뱉으며 주먹질을 할지 모른다. 회한에 젖은 작부는 잔을 들고 눈물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 도광의가 이 작은 소주잔과 마주앉았던 겨울날엔 아름답고도 슬픈 시가 세상으로 걸어나왔다.

1967년 12월, 아마 겨울방학을 일주일쯤 앞둔 월급날이었을 것이다. 무시로 외상 술을 마셨던 총각선생 도광의(당시 경남 마산고교)는 교실에서 학교 정문을 살폈다. 외상값을 받으려는 술집 주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외상값을 모조리 갚고 나면 하숙비도 못 낼 형편이었다.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온 도광의는 무학산 서원골짜기에서 합포만을 바라보며 해지기를 기다렸다. 어둠이 내릴 무렵 도광의는 여러 외상술집 중 한 집으로 달려가 외상값을 갚고 또 마셨다.

취기 탓일까? 문득 함안여고 노총각 한하균 선생이 보고싶었다. 70리를 달려가 그를 만났다. 두 사람은 대취했고 도광의는 함안 파수여관에 들어가 잤다. 새벽에 너무 추워서 군불을 때달라고 했다. 장작과 짚단이 뿜어내는 불빛에 검은 마당이 붉게 물들었다. 그 위로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검은 적막과 붉은 불빛, 그리고 흰 눈…. 그날 새벽을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도광의는 그 새벽 철길을 따라 함안에서 마산까지 걸어왔다. 북마산 역에 도착할 무렵 날이 밝아왔다. 술집 2층에 자리 잡은 하숙방으로 기어 들어간 도광의는 곧바로 잠들었다. 그날 교사생활 처음으로 결근했다. 잠에서 깼을 때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휘적휘적 손을 저어 창에 낀 성에를 닦자 마산 합포만이 부옇게 들어왔다. 그 순간 시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입에서는 시가 쏟아졌다.

'경남 함안여고 백양나무 교정에서는 뼈 모양의 하얀 갑골(甲骨)길이 보인다. (중략) 어쩌다가 높은 둑길 위로 청남빛 가을이 펼쳐지면 소수레바퀴에 햇살이 실려가고 닷새 만에 서는 우시장 읍내에는 건장한 중년들로 파시가 선다. (중략) 사십대 노총각 한 선생은 벼 익는 먼 황소울음에 젖다가도 삼천포 앞바다의 편구름을 바라본다.' -갑골(甲骨)길-

사람들은 도광의 하면 갑골길, 갑골길 하면 도광의를 떠올린다. 설령 도광의를 몰라도 '갑골길'을 아는 사람은 많다. 소주 몇잔이 도광의를 삼켰고, 도광의의 '갑골길'은 저잣거리를 삼킨 셈이다.

시인 권기호는 '갑골길'을 두고 '도광의가 쓴 게 아니라 절박한 상황과 영감과 절묘한 시각이 맞아떨어진 것' 이라고 했다. 도광의가 쓴 게 아니라 도광의 몸을 빌려 시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비좁은 잔 속에 갇혔던 소주 몇 모금이 시인 도광의의 혈액을 타고, '갑골길'로 태어나 세상을 활보하는 것이다.

40여년 세월이 흘렀지만 노시인은 지금도 누가 '갑골길 좋다' 하면 아낌없이 술을 산다. 40여년 전 겨울밤 도광의가 벗했던 소주잔은 무서운 시간의 파괴력까지 간단히 넘어버렸다.

글·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시인 도광의는…

매일신문 신춘문예 1965년 시 '비 젖은 홀스타인', 66년 '해변에의 향수'로 당선. 1974∼1978년 현대문학 추천. 시집 '갑골(甲骨)길', '그리운 남풍'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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