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에 야구팀이 있었다. 매년 갖는 경기에서 천국팀은 지옥팀을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비행기 사고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한꺼번에 천국팀에 들어오게 됐다. 천국팀 감독은 이제 이길 수 있겠다며 지옥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미 이 소식을 들은 지옥팀의 감독은 도전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기기는 힘들거야." 천국팀 감독이 맞받아쳤다. "아니야. 이번에야 말로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 그러자 지옥팀의 감독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사고 난 비행기엔 말이지. 심판도 같이 타고 있었거든…." 지어낸 이야기지만 야구 심판은 죽어서도 '악인'이 되는 숙명의 직업이 되고 말았다.
2006년 6월6일 한화와 SK의 경기. 9회말 투아웃에서 짧은 안타가 터졌다. 한화의 2루 주자가 홈까지 쇄도해 절묘한 슬라이딩으로 태그를 피하며 홈을 스쳐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판정은 아웃(TV 정지화면 판독은 세이프). 김인식 한화 감독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쉴새없이 오석환 주심에게 항의했지만 이미 경기는 끝났고 심판들도 철수해 버렸다. 그러나 화가 난 관중들이 야유와 비난을 퍼부으며 출입문 앞을 지키는 바람에 심판들은 밤 12시가 넘어 겨우 외야쪽 문으로 야구장을 빠져나갔다. 다음날 외야석에는 오심을 빗댄 커다란 현수막까지 걸렸다. 판사도 인간이므로 실수를 하지만 결코 '악인'으로 여기진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역할을 하는 야구 심판의 잘못에 대해서는 '악당'의 굴레가 씌워져 버린다.
삼성의 조동찬이 벤치를 지키던 무명 시절, 경기의 마지막 타석에 대타로 기용됐다. 이미 기울어진 경기였지만 2군에서 고생해 기다려온 기회인지라 멋진 타구를 치고 싶었다. 그러나 볼이라고 생각한 바깥쪽 높은 직구로 스윙도 못해보고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항의도 못하고 돌아선 조동찬은 억울한 심정을 그날의 일기에 썼는데 같은 방을 쓰는 선배가 마침 그 글을 보고 전날의 주심을 본 동년배 심판에게 이튿날 넌지시 일러줬다. "걔들은 볼 한 개에 인생이 걸려 있는데 너무 심했던 거 아냐? 심판 이름까지 적었던데…. 그러다 천당 가겠어?" 후배의 사정이 마음에 와 닿았던 그 심판은 조동찬을 불러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한다.
어쩔수 없는 실수라 해도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늘 잘하다 한번의 실수로 자신은 처절히 상처를 받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도 엄격해야 하는 것이 심판의 길이다.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을 잘못 판정해 김영진(전 삼성 포수)이 관중석으로 공을 던져버리게 한 김동앙 심판도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그해로 옷을 벗었고 지난해 1루에서 연거푸 오심을 했던 임채섭 심판도 한때 대인기피증에 걸려 고생했다고 한다.
세상에 존경받는 저명인사는 많아도 존경받는 야구심판은 드물다. 그것은 결코 그들의 인격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다만 야구라는 세계가 참으로 오묘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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