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역 건설업계는 요즘 한숨이 부쩍 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로 '생존 위기'를 느끼고 있는데다 지역 내 대형 공공부문 공사는 곳곳에서 발주되고 있지만 정작 수주 기회는 좀처럼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 건설사들은 "공공 부문 공사 물량으로 보면 IMF 이후 10년 만에 지역 건설업이 다시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며 "그러나 소형 공사를 빼고는 수주 경쟁력이 떨어져 역외 몇몇 1군 업체들의 잔치가 될 공산이 크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 건설업계 안팎에서는 올해부터 쏟아지는 대형 공사를 지역 건설업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추락한 지역 건설업
건설업계의 규모는 통상 시공 능력 평가로 따지게 된다. 따라서 매년 공사 수주 실적 및 신용도 등에 따라 전국 종합건설사를 대상으로 순위를 매기는 시공능력평가(시평)를 보면 건설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대구에서 시평 100위 내 업체는 단 두 곳. 49위를 차지한 화성산업과 68위인 C&우방이 전부다.
그러나 10년 전인 97년 지역 업체 중 시평 100위 내 업체는 청구, 우방, 보성, 화성, 서한 등 무려 5개였다. 순위 또한 청구가 21위, 우방이 32위, 보성이 43위 등으로 현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대한건설협회 대구시회 정화섭 부장은 "건설업은 10억 원당 고용유발 효과가 20여 명에 이르고 타 산업 생산 유발 효과의 1.9배에 이른다."며 "지역 전체 경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 것은 건설 경기와 상당한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위상뿐 아니라 내용을 살펴보면 지역 업체의 성적은 더욱 초라해진다.
지난 2006년도 대구 지역 전체 공사 발주 금액은 5조 원에 이르지만 외지 업체 수주액이 3조 8천억 원으로 76%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300억 원 미만 공사에 대해 지역 업체가 인센티브 혜택을 받는 공공 부문의 경우도 대구시 발주 공사 2천228억 원 중 지역업체 수주액은 1천363억 원으로 60%를 점하고 있지만 국가기관 발주 공사 5천459억 원 중 수주 금액은 1천91억 원으로 20%에 그치고 있다.
한때 수도권까지 진출했던 지역 업체들이 이제 '안방'조차 내준 셈이다.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IMF 이후 지역 SOC 사업이 대폭 줄면서 전체 사업 물량이 줄어든데다 주택 부문은 역외 1군 업체들이 진출하면서 지역업체는 설 자리를 잃은 상태"라며 "현재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단순 하도급 업체를 빼고 살아남을 건설사는 몇 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2004년 378개에 이르렀던 지역 내 종합건설사가 수주 물량 감소로 폐업과 타 시·도로 이전하면서 지난해에는 292개로 대폭 줄어든 상태다.
◆다시 온 기회
민간 부문이 쉽게 침체의 골에서 벗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지역 건설사 입장에서 올 한 해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는 시기다.
세계 육상대회 유치 및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 선정에 따른 후광 효과, 경부 대운하 및 테크노폴리스 공사 등 굵직한 대형 SOC 사업이 잇따르고 있는데다 지역 출신 대통령 당선으로 개발 소외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만에 '큰 장'이 섰지만 대구 업체들이 차지할 공간은 많지 않다.
올해부터 발주되는 공사 중 상당 부분이 대형 공사이지만 300억 원 이상 최저가 입찰 공사나 턴키 공사의 경우 현실적으로 지역 업체가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다 최근 들어 대형 개발 사업은 민간 자본 투자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자본력이 약한 지역 기업들은 명함조차 내밀기가 쉽지 않다.
실제 올해 발주 공사 중 경부고속철 대구도심 정비 사업만 대구시가 지역업체 우선 배정을 위해 70여억 원 단위로 분할 공사를 발주할 뿐 혁신도시 조성공사나 4차 순환선, 테크노폴리스 조성 공사 등은 대부분 1군 대형 업체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화성산업 박종수 개발팀장은 "시평 상위 10개 업체들의 전국 시장 장악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 이들 업체 간 담합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며 "지역 사업이지만 규모가 큰 사업은 웬만해서는 참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동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와 경부 대운하 사업 등 민간 참여 방식의 사업은 아예 원천적으로 참여 기회가 없는 실정.
지역 건설사들은 "대규모 민간 개발 사업의 경우는 시공사가 최소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 사업비를 부담해야 하는 만큼 보증 여력이 1천억~2천억 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역 업체들로서는 그림의 떡"이라며 "앞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업체 육성을 위한 토대 마련을
지역 건설사들은 역외 거대 업체와의 '공정한 경쟁'이 '불공정 거래'인 만큼 정책적인 차원의 생존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300억 원 이상 대형 공사의 지역업체 참여를 위한 인센티브 부여와 턴키 공사 발주시 심사제도 개선이다. 업체들은 300억 원 이상 공사에 대해 지역업체와 공동 도급시 비율에 따라 5% 정도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지역 업체 참여가 대폭 늘어날 수 있으며 턴키 공사도 심사 위원 중 지역 출신이 절반 이상 선정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턴키 공사 심사 때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심사위원 참여가 의무화되면 몇몇 업체들의 편중 수주를 막을 수 있으며 지역 업체 참여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며 "지역 공동도급 공사도 가점제가 아니라 배점제 방식을 적용하면 참여 비율 폭이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역 업체들의 자구 노력도 필요하다,
IMF 이후 지역 업체 간 결속력이 약화되면서 공동 이익을 위한 노력이나 정보 교환 창구 등이 없어 가뜩이나 떨어지는 경쟁력이 더욱 약화되고 있는 탓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IMF 이전에는 대구 지역 내 7개 1군 업체들이 협력 체제를 만들어 지역 시장 보호와 타지 진출을 선도했지만 최근에는 지역 업체들의 구심점이 없다."며 "지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역 업체 간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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