面(면) 단위까지 상세히 표시되는 1/20만 지도를 놓고 경북과 전남을 비교해 보면 단번에 엄청난 차이를 알 수 있다. 전남은 바둑판처럼 도로가 깔려 있는 반면 경북은 휑하다. 특히 경북 동·중·북부는 산악지역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완전 맨땅이다. 지난 10년간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L자형 국토개발이 이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경북도 한 건설담당 공무원 얘기다. 도로 확장 예산을 따기 위해 중앙부처에 올라가면 국·과장은 물론 담당 사무관조차 만나기 어려웠고, 설사 만난다고 해도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한다. BC(Benifit Cost·투자 대 효과)가 1.0 이상은 돼야 사업 검토 대상이 되는데 경북은 이 점수가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 투자를 해봐야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공무원은 "거주민 750여 명에 불과한 고흥군 소록도는 BC가 높아서 다리를 놓고 국도를 연결했느냐."고 따졌더니 그때는 과거 정권 당시 소외됐던 호남의 '지역균형개발' 논리를 갖다 대더라면서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흥분했다.
그러는 사이 전남은 웬만한 섬들에도 모두 다리가 놓일 정도로 도로망이 완비된 반면 경북은 천덕꾸러기였다. 지역민들의 염원이던 국도 7호선(포항~울진)이 19년째 찔끔 공사를 하고 있다. 울진·영덕은 수도권에서 접근하기에 가장 먼 지역이 돼 버렸다. 사람이 모일 턱이 없고, 자연히 개발에서 소외됐다.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진 울릉도의 일주도로는 부지 매입과 확장·포장을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지방도인 까닭에 아직도 순환도로가 완공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도로 건설을 위해 국도 승격이 안 된다면 국지도(도로 편입 보상은 도비, 건설은 국비 부담) 승격이라도 해달라는 숱한 요청이 투자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다행히 최근 동서남해안권발전특별법이 제정되고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으로 낙후된 동해안에 대한 투자와 개발을 유도해 U자형 성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됐다. 여기다 지역 출신 대통령 당선인이 나오면서 그동안 소외됐던 대구경북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실제 계획만 했던 동해중부선 철도가 곧 착공될 예정이고, 언제 시작할지 몰랐던 동서6축 고속국도(영덕~청송~상주)도 조만간 첫 삽을 뜰 모양이다.
하지만 준비없이 정부가 주는 것을 받기만 하려 하거나 어영부영하다가는 아무런 성과없이 5년이 흘러가버린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기회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인프라 하나 구축하지 못한 점을 우리는 지금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정통성이 취약했던 정권은 고향을 배제한 채 호남·충청권에 선심 행정을 베풀 수밖에 없었다. 지역민들은 그들대로 요구 사항이 있으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정부 관료들부터 설득하는 체계를 거칠 필요 없이 전화 한 통화로 정권 실세들과 거래를 했던 탓에 지역 발전 프로그램은 마련되지 않았다. '오늘의 요구가 내일의 법'이 되는데 울지 않으니 젖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
실패를 거듭하지 않으려면 대구시와 경북도가 머리를 맞대고 공동 전선을 펼쳐야 한다. 민선 4기 출범 이후 경제통합을 위해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지사가 화합해 온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여전히 화학적 결합은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특화된 전략보다 남의 것 베끼기에 급급한 경우도 있었다. 경북이 시작한 로봇랜드 유치에 대구까지 나섰다가 모두 탈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지능형자동차, 모바일, 임베디드, 바이오 산업은 조금씩 차이는 있을지라도 서로 내 것만 주장한다. 연계한 전략을 짜고는 있되 끼워넣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지정과 차기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구상 등으로 대구경북의 협력과 공동 전략산업 육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대구시와 경북도가 함께 만든 세밀한 그림을 보고 싶다. 중앙정부가 도저히 거부 핑계를 댈 수 없는 그런 설계도를 말이다.
최정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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