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번에 나본좌 완전 쩔었어."
정범진(43·대구시 달서구 장기동) 씨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대화를 하다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하소연했다. '본좌'는 얼마 전 '허본좌'(허경영 씨를 네티즌들이 높여 부른 말)라는 말을 통해 누군가를 높이는 뜻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쩐다'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아들은 "이번에 나훈아 기자회견에서 바지춤을 풀어헤치려는 모습이 짱 멋있었다!"며 수다를 이어갔다.
세대 간 언어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영어, 인터넷 외계어, 한자, 한글 등이 버무려진 청소년들의 신조어는 최근 들어 더욱 짧아지고 다양한 용례를 자랑하며 퍼져나가고 있다.
◆센스가 필수='쩐다'는 모 인터넷 게임사이트에서 생겨난 신조어. '한가지 일에 능통하다'는 뜻이 파생돼 '대단하다, 잘한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나쁜 의미도 있다. 못생긴 친구를 보고 "걔 얼굴이 좀 쩔어."라고 하던가, "지금 좀 쩔어."라고 하면 좋지 않은 상황임을 강조한 의미가 된다.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구사하는 센스가 필수다. 정 씨는 "아들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됐다. 재미있는 말장난이라고 봐주고 싶지만 언어습관이 잘못될까봐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장주경(41·여·북구 침산동) 씨는 딸과 함께 TV를 보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핀잔을 들었다.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맨이 '오나전캐안습'이라는 희한한 단어를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장면이었다. 여기서 '오나전'은 '완전'의 컴퓨터 자판 오타, '캐안습'에서 '캐'는 '꽤', '아주'를 뜻하는 접두어로 쓰이고 '안습'은 눈 안(眼)에 젖을 습(濕)을 붙여 '눈물이 나는 상황'을 말한다. '오나전캐안습'이 '정말 슬프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장 씨는 한참동안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려야 했다.
◆젊은이의 재치?=인터넷 상에서 통용되는 청소년들의 신조어는 국적불명, 정체불명이다. 특정 게임 상황에서 파생된 것도 있고, 영어의 앞부분만을 떼서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축약형 말. '열폭'은 질투와 시기의 과장된 표현으로 '열등감 폭발'의 준말이다. '지못미'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의 줄임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굴욕사진'(기이한 모습의 사진이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처한 모습)이 인터넷에 회자될 때 주로 검은리본(▶◀)과 함께 사용된다.
'크리'는 '결정적인' 혹은 '치명타'를 뜻하는 크리티컬(Critical)의 약자. 어떠한 상황에 '~크리'를 붙이면 설상가상처럼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안습크리'(아주 슬프다) '대박크리'(크게 대박났다) 등이 대표적이다.
'뉴비'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커뮤니티 등 한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나같은 뉴비도 아는 사실"이라는 식으로 사용된다.
대학생 김재현(21) 씨는 "국어 파괴라는 지적도 많지만 사회가 변화하는데 언어도 바뀔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의 재치 정도로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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