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옛 결혼식에서는 짓궂지만 재미있는 풍속들이 있었다. 첫날밤 이웃들이 신방의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뚫어 킥킥거리며 훔쳐보는 신방 엿보기도 그 중 하나였다. 신랑신부에겐 더없이 부끄러운 노릇이었겠지만 이 풍속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 중매결혼인 신랑신부로서는 서로가 낯설고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객들이 밤이 이슥하도록 물러났다 들여다봤다를 되풀이하며 숨죽인 웃음소리까지 연발되노라면 신방의 긴장감도 서서히 풀리기 마련이었다. 신방 엿보기는 신랑신부의 원활한 첫날밤을 돕는 장치이기도 했던 셈이다.
신랑 매달기도 필수 코스였다. 친족들이 신랑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북어나 방망이로 발바닥을 때리며 온갖 짓궂은 말로 신랑을 괴롭히는(?) 풍속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앞으로 쇠털처럼 많은 날에 즐거움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삶의 지혜가 녹아있었다. 우리 민족의 여유와 재치, 해학을 보여주는 풍습이자 기쁘고 즐거운 일을 살짝 괴롭히는 것으로 축하하는 역설이 배어있기도 하다.
고교 졸업시즌인 이맘때면 전국 어디서나 벌어지는 짓궂은 장난 역시 이런 역설적 축하의 한 단면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고교 졸업식에서는 친구나 후배들이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준다는 명목으로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지고, 교복을 찢어대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문제는 그 정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엔 스프레이 락카나 까나리 액젓 등을 뿌리기까지 하고 있다.
허옇게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 이리저리 쫓고 쫓기는 모습은 졸업식이 아니라 泥田鬪狗(이전투구)의 그것이나 진배없다. 헹가래 장면도 적지 않다. 지난 2002년 서울의 한 고교 졸업식에서 졸업생이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다 떨어져 사지가 영구마비되는 사고가 있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국에서 처음으로 서울시 교육청이 올 졸업시즌부터 헹가래'밀가루 및 계란 투척'교복 찢기 등을 금지했다고 한다. 축하는 즐겁고 기쁘게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추억 만들기는 하루빨리 퇴출시켜야 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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