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활로 못찾고 휘청대는 재래시장 "살길 없을까?"

▲ 슬럼화된 재래시장엔 인적도 드물다. 지난 2일 낮 대구 서구 비산동 한 시장 뒤편 점포.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슬럼화된 재래시장엔 인적도 드물다. 지난 2일 낮 대구 서구 비산동 한 시장 뒤편 점포.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살길이 없을까?"

2004년 정부가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 지 만 3년이 지났지만 대구의 재래시장들은 뾰족한 활로를 찾지 못한 채 고사 일로를 걷고 있다. 각종 활성화 대책은 제자리걸음이고 재래시장은 명맥만 유지한 채 숨만 헐떡이고 있다.

◆자포자기하는 상인들=서구 비산동 A시장 경우 5년 전만 해도 지하 5층, 지상 34층(828가구)의 주상복합건물로 재개발한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 기대에 들떴던 곳이다. 40년째 이불장사를 하고 있다는 김경숙(65·여) 씨는 주변에 대형마트들이 들어서고 재개발 계획까지 물건너가면서 문 닫는 가게가 많아졌다."며 "요즘엔 하루 1만 원어치도 팔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구청이 아케이드(지붕)를 설치해 시장 분위기를 띄워보자고 제안했지만, 10%의 자가 부담을 꺼리는 상인들의 반대로 현대화 계획은 표류하고 있다. 서구청 관계자는 "상인 부담분을 5%까지 낮춰봤지만 별 반응이 없다. 상인들의 전망이 비관적이다 보니 재건축·재개발 도시계획을 세울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라고 말했다.

남구 대명동 B시장. 90년대 초반까지 제법 큰 시장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에는 손님들 발걸음이 눈에 띄게 줄었다. 벌써 몇 개월째 점포떨이를 하는 가게도 있었고 주인이 몇 차례나 바뀐 곳도 있었다. 한 60대 주민은 "예전 설, 추석 등 명절이나 초등학교 소풍, 운동회 전날 같은 특별한 날이면 사람들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들썩댔지만 이제는 다 옛날 얘기"라며 "지붕 공사를 한 곳도 장사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북구 산격동의 C시장은 시장 기능을 거의 상실해 버렸다. 경북대에 인접한 곳이어서 수년 새 가게 대부분이 학생들을 위한 술집, 밥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 상인은 "벌써 몇 개월째 떨이만 하는 가게도 있다. 아무리 학생들의 왕래가 많아도 시장상인들 매상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제자리걸음하는 활성화 정책=지난달 29일 오후 대구 북구 칠성시장 유료주차장. 3층 규모의 주차장 절반가량이 텅 비어 있었다. '최초 30분 500원, 30분 초과 10분당 250원'이라는 주차요금표가 썰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생선가게 앞에서 만난 한 40대 자매는 "한번 장을 보는 데 2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승용차를 가져오기가 부담스럽다."며 "재래시장에서는 많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것이 장점인데 버스를 타고 오면 많은 물건을 사기 어렵다."고 했다.

아케이드 공사, 상품권 유통 등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정책들도 기대 이하 효과에 머물고 있다.

칠성시장의 한 상인은 "아케이드를 하면 시장이 좋아진다고 해 상인 부담금 100만 원을 냈다. 그런데 명절 매상은 지난해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고 했다. 남구 대명동의 한 시장 상인은 "재래시장 상품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액면가의 80% 이상은 사야 거스름돈을 현금으로 줄 수 있는 탓도 있지만 대부분 손님들은 어디에서 상품권을 사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대구시의 원죄가 크다는 얘기가 많다. 대형마트의 진출을 무차별적으로 허용, 재래시장 위축을 방관했다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는 그동안 '재래시장 특별법과 대형마트 규제는 별개의 내용'이라며 팔짱만 끼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4차 순환선 밖 상업지구에 한해 대형마트 입점을 허용하겠다.'며 뒤늦게 선언하고 나섰지만 이미 대구시내 대형마트의 개수(18개)는 포화상태다.

시 관계자는 "시 정책이 모든 재래시장을 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상인들이 단합해 지원 기금을 요청하는 등의 자체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해놓고도 활용률이 27% 정도에 그치거나 현금 영수증 발행이 저조한 등 고객 편익을 등한시하는 대구 재래시장 상인들의 서비스도 개선돼야 한다는 것.

장흥섭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장상인회의 단합과 의지만 있으면 정부의 지원을 얼마든지 받을수 있다."며 "이미 시민들의 소비패턴이 대형마트 등으로 기울었다면 장기적으로 일본의 노인 전문 시장처럼 연령층이나 문화코드에 맞는 특성을 잡아 재래시장만의 장점을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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