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행복학, 행복경제학, 행복정치학 등 '행복'에 관한 연구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올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GDP(국내총생산)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들의 행복까지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할 것을 두 명의 외국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에게 의뢰했다. 영국에서도 GDP를 대체할 행복지수의 도입을 둘러싼 논쟁에 이어 빈곤·건강보험·교통문제 등을 다루는 정책을 입안할 때에 '행복'을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고도성장의 폐해와 부작용을 우려한 중국이 환경과 부문 간 균형·조화를 강조한 허셰(和諧)사회 건설을 부르짖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라 할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이 잘사는 정도를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지표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 온 것으로는 GDP가 있다. GDP가 증가하면 일자리와 가처분소득이 늘어남으로써 국민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 그러나 GDP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기준으로 측정하다 보니 가정주부의 가사노동, 국민들의 문화·복지 수준, 환경자원 등과 같이 시장에서 거래되지는 않지만 국민의 삶과 행복에 매우 소중한 것들을 빠뜨리고 있다. 경제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환경오염이나 자연파괴를 비용으로 계산하여 GDP에서 공제한 그린GDP를 산출하려는 움직임이 국제기구와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이 행복지수개발의 완전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GDP와 그린GDP를 넘어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행복지수 중에서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민총행복)가 최근 들어 주목을 받고 있다. GNH를 맨 처음 주창한 사람은 히말라야 산맥 아래의 조그마한 나라 부탄의 국왕이다. 그는 70년대 초에 안정적인 경제발전과 자연환경 보호, 민족문화의 증진과 좋은 통치 등을 행복의 네 가지 요소라 보고 행복지수인 GNH를 만들었다. 부탄 왕국은 남한의 절반 크기에 인구 65만 명, 1인당 국내총생산 1천200달러의 가난한 나라임에도 영국 레스터대학이 조사한 국민 행복지수에서는 세계 8위에 올랐다. 외견상으로 볼 때 물질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형편없는 후진국이지만, 의료와 교육은 전액 무상이며 자연보호를 위해 연간 관광객 수를 6천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부탄의 사례는 10년 전만 해도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는 넘치는 풍요의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경제성장이 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지적했다.
GNH와 같은 행복지수의 개발을 위해 경제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GDP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지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사람의 주관적인 마음상태인 '행복'을 어떻게 수치로 표시하고 우열을 매길 것이냐가 가장 큰 숙제다. 더구나 '행복'에 대한 관점과 평가의 잣대는 한 국가의 사회적·문화적·종교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행복의 결정 인자라 할 수 있는 돈과 명예, 건강, 환경, 종교 중에서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행복지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여러 연구단체들이 발표하는 행복지수의 국가별 순위도 일관성이 없고 들쭉날쭉하다. 지난 1998년에 런던정경대학(LSE)이 54개국을 대상으로 한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최빈국인 방글라데시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그 당시 외환위기로 인해 고통받던 우리나라는 23위에 올랐다. 지난해에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178개국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고, 한국은 102번째로 처졌다.
GDP 규모가 세계 13위이고 지난 2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이 10배 이상 증가한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는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 선진국 행복 후진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서민의 삶이 팍팍하여 일자리 창출도 쉽지 않은 우리네 형편에서 행복지수의 개발을 논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흐름에 부응하여 우리도 한국의 실정에 맞는 행복지수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행복지수 개발의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국민 모두가 GDP의 허상에서 벗어나 무엇이 행복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국민들의 삶의 질과 행복에 기초한 정책적 의사결정을 가능토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2월 25일에는 온 국민의 기대 속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를 통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안정과 화합하는 가운데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행복한 사회가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이화언 대구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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