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8시 대구시 중구의 한 주택가.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자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담장을 타고 흘러나왔다. 이진숙(가명·49) 씨 집은 벌써 설 분위기였다. 다섯 평 남짓한 두 칸 방에는 훈훈한 기운이 피어올라 있었다. 방안의 냉기는 느끼기 힘들었다.
보람(이하 가명·13), 보은(11·여), 보희(9·여) 삼남매는 열심히 엄마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엄마가 사준 한복이 마냥 좋은 막내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엊그저께 아이들과 장을 봤어요. 애들 좋아하는 명태포에다가 부추, 주스, 사과도 샀고 밀감도 박스째로 샀어요. 어찌나 신나하던지…. 내일은 아이들이랑 설음식을 만들려고요."
본지 이웃사랑(지난해 12월 5일 보도)에 사연이 나간 이후 이진숙 씨네에 돌아온 설은 예전의 우울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진숙 씨는 알코올 중독에 걸린 남편(53)이 가정을 돌보지 않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자신마저 위암에 걸려 위를 반이나 잘라내고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 후 2개월여 만에 다시 만난 이진숙 씨네는 행복이 방안 가득 흘러 넘쳤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보니, 이제 우리 가족에게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아요.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넘치고, 쉴새없이 재잘거리고, 엄마한테 노래도 불러주며 안 하던 응석도 부려요."
1천200만 원에 이르는 성금과 무언의 격려를 보내준 여러분들께 감사 드린다고 여러 번 말한 이 씨의 몸과 마음은 많이 회복돼 있었다. 중학생이 되는 보람이 교복은 중구청에서 마련해준다고 했다. 한 학년이 올라가는 보은이, 보희도 새 학용품을 들고 서로 자랑하기에 바빴다. 매일 교회 공부방에 나가 새 친구를 사귀고 공부도 열심이라고 했다.
"저는 꼭 경찰관이 돼 나쁜 사람 혼내줄 거예요.(보람)"
"저는요, 간호사가 돼 엄마한테 약을 주거나, 미용사가 되어서 엄마 머리 예쁘게 만들 거예요.(보은)"
설날을 맞아 새해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니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함을 질렀다. 감기에 걸려 연방 기침을 하면서도 아이들 노는 소리에 이 씨는 웃고 또 웃었다. 경북의 한 요양원에 있는 아빠도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이렇게 행복하게 설을 맞이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아요.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우리들 잘 살아갈게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삼남매는 합창을 했다. 밤 깊은 줄 모르고 재잘거렸고 또 노래를 불렀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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