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영(43·여·가명) 씨의 두 다리는 아무런 감각이 없다. 17년 전 오늘. 그날도 설을 코앞에 둔 2월 5일이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어요. 퇴근을 해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었지요. 지금은 달구벌대로지만 그때는 왕복 4차로 도로였어요. 건너편 사진관을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뭔가가 번쩍하더군요."
5일 오후 대구 달서구 신당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박 씨는 '이웃사랑' 제작팀에게 "우연치고 묘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사고 직후 박 씨는 전화번호를 말하라며 내 볼을 때리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왜 내가 여기 있냐고. 세 살 터울의 언니가 올 때까지 기억의 필름을 더듬었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는 다리처럼 사고 당시의 기억은 지금도 없다.
"사고를 낸 운전자가 왔었다더군요. 무보험 차량이었다고. 병원비 때문에 운전자의 집을 찾아간 언니가 전하더군요.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100일이 채 안 돼 보이는 아기가 있더라고. 사글세 신세더라고."
27년을 살면서 모아둔 1천만 원을 몽땅 병원비로 쏟아부었다. 입원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의사는 알려줬다. 평생 두 다리를 쓸 수 없을 거라고. 몸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가슴은 미어졌다.
곧 죽을 것만 같던 시간도 질기진 못했다. 박 씨는 예전의 그녀로 서서히 돌아왔다.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을 뿐. 그래서였을까. 사랑의 감정마저 장애가 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헤어진 전 남편을 만났던 것.
"사고 이듬해에 전 남편을 만났어요. 목욕탕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죠.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죠. 저를 아껴주고 이해했으니까요. 그리고 1년을 만났죠."
결혼을 했다. 아이도 낳았다. 은지(13·여), 은호(11)는 잃어버린 두 다리가 되살아난 것 같은 느낌을 줬다. 하체 마비쯤은 두 아이를 돌보는 데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남편이었다. 바깥에선 착한 양처럼 비쳤지만 집안에선 그러지 않았다. 오로지 컴퓨터 게임에만 몰입했다. 남편은 결국 장애인인 그녀를 이용해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아이들의 교육비라는 핑계였지만 실은 사업자금으로 사용됐다. 무언지도 모르는 그 사업에.
"결국 결혼 10년 만에 헤어졌어요. 후회는 없어요. 다만 경제력이 없는 저 때문에 아이들이 힘든 것 같아 미안하죠. 그래도 내색을 하지 않아 더 고맙죠."
딸 은지의 꿈은 사회복지사다. 장애가 있는 친구를 먼저 챙길 줄 안다. 그래서 지난해엔 대구경찰청에서 준 봉사대상도 받았다. 대견스럽다. 하지만 은호는 조금 걱정스럽다.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어 병원을 찾았는데 '과잉행동장애'가 있다고 했다. 장애가 있는 자신의 탓인 것 같아 안타깝고 미안하다. 그래도 착하기만 한 두 아이는 두 다리나 마찬가지다.
"세배하러 다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설이 가까워지면 생각나는 사고의 기억 대신 올해는 두 아이들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남매 홀로 키우는 강은희씨에게 성금 845만원 답지
매일신문 '이웃사랑' 제작팀은 5일 신장 기능이 멈춰버린 채 태어난 아기 예진이와 함께 투병하고 있는 임상철(45·본지 23일자 10면 보도) 씨 부부에게 1천69만 8천900원의 성금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받은 임상철 씨는 "예진이를 살리기 위해 이토록 많은 분들의 성금이 모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귀한 성금, 아이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소중히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기사가 나간 뒤 경북대병원과 대구 서구청에서도 성금을 보내주셨다."며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했습니다.
한편 청각언어장애를 앓고 있는 최희정(13·여), 영철(12) 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는 강은희(가명·40·본지 30일자 10면 보도) 씨에게 19개 단체, 61명의 독자분께서 845만 7천900원의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일안과병원 100만 원 ▷정약국 50만 원 ▷하이트맥주㈜ 대구지점 50만 원 ▷㈜태원전기 50만 원 ▷국제전기㈜ 30만 원 ▷금강엘이디제작 20만 원 ▷한영한마음아동병원 20만 원 ▷우리병원 20만 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 원 ▷경신교육재단 20만 원 ▷신행건설 20만 원 ▷한라효흥장학문화재단 10만 원 ▷수흥섬유㈜ 10만 원 ▷김영준치과의원 5만 원 ▷경동치과 5만 원 ▷행복한나눔성서점 5만 원 ▷경림치과 5만 원 ▷상인현대동방타운부녀회 5만 원 ▷하나회 4만 원
▷김성우 55만 원 ▷서봉수·이신덕 故 하종홍 변호사 각 50만 원 ▷정기열 30만 원 ▷성호상 15만 원 ▷오복남 이영자 박태용 김경익 각 10만 원 ▷이 영 전홍영 박기양 도창렬 박승호 장경희 노재영 정미옥 노광자 김민철 이인순 안영호 각 5만 원 ▷김정욱 각 4만 원 ▷권오순 신광련 구회덕 조순희 전소은 김현태 성춘택 이종덕 구본섭 이해수 김태욱 박명규 김용락 각 3만 원 ▷권정갑 김홍대 이정선 박상일 기정숙 최은영 윤덕준 성영식 박지원 각 2만 원 ▷홍양표 이소석 진수진 진희진 김정만 유창식 이은정 김수일 이상숙 최태호 박태용 이옥순 노현선 각 1만 원 ▷우미애 5천 원
또 '정과덕'이라는 이름으로 한 분이 11만 2천900원, '486'이라는 이름으로 한 분이 10만 원, '남복현남내'라는 이름으로 한 분이 1만 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저희 '이웃사랑'에 관심과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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