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퇴계 15대 종손 100세 이동은 옹의 새해 덕담

"忠孝가 참된 세계화"

▲ 올해 백세를 맞은 퇴계종손 이동은(왼쪽) 옹의 100세를 축하하기 위해 서울 사는 동생 이동술(71) 옹이 찾아왔다.
▲ 올해 백세를 맞은 퇴계종손 이동은(왼쪽) 옹의 100세를 축하하기 위해 서울 사는 동생 이동술(71) 옹이 찾아왔다.

"우리 고장에서 대통령도 났으니 이제 모든 게 어른스러운, 듬직한 나라가 됐으면 합니다. 옛부터 우리 경북은 예의염치를 중시하는 곳이니 모두들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허허허…."

퇴계 선생의 15대 종손인 이동은(李東恩) 옹이 설날을 앞두고 대구·경북 주민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이전부터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린 만큼 예의와 범절을 바로 세워 나간다면 머잖아 전세계가 우리를 배우러 오게 될 겁니다. 비로소 참된 세계화를 이루게 되는 거지요. 노래 잘하고, 운동 잘하는 것도 국위를 선양하는 일이지만 남의 나라를 가르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게 그 중 으뜸이지요."

섣달 그믐께인 5일 안동 도산면 퇴계종택 사랑채에서 '모두 어른스러워지기' 덕담을 시작으로 '예의지국 세계화론'까지 펼치면서 이 옹은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 머리를 자주빗고 아래 윗니를 딱딱 부딛치고, 이마와 콧잔등을 자주 부벼주는, 퇴계 선생의 건강유지 비법 '활인심방' 덕분인지 10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 돋보기도 없이 맨눈으로 명함의 잔글씨를 그대로 읽어내기도 했다.

어스름 땅거미가 지는 초저녁 때아닌 낯선 길손을 맞는데도 "추운데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며 반긴 이 옹. 안채로 나가 손님이 왔음을 알리자 잠시 후 손부가 식혜를 내온다. 이어 손자가 들어 와 "저는 이집 손자 치억이라고 합니다."라며 큰절로 손님을 맞는다. 마주 엎드린 채로 통성명을 하는 등 전통 접빈의례가 몸에 배어 있다. 설날 세배 때나 보는 큰절이 퇴계종택에선 일상의 일이다.

5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퇴계종택에는 지난해 8월 이 옹의 증손이 태어나면서 모두 4대가 함께 살고 있다. 이 옹과 함께 이 옹의 아들 근필(77) 씨와 손자 부부, 그리고 지난해 8월 태어난 한살배기 증손이다. 퇴계 후손답게 손자 치억(34) 씨는 지난해 4월부터 성균관대 대학원 유교철학과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다.

설 음식을 장만 하느라 바쁘기 그지없는 이들 손자 부부이지만 곁에서 지난 연말 백일을 갓 지난 이 옹의 증손 이석(1)이가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배밀이를 하는 모습이 여유롭다. 이번 설은 퇴계 18대 종손이 될 증손이 태어나 처음 맞는 설이기도 하다.

여기에 올 설 이 옹은 100세를 맞는다. 우리 나이로 꼭 100세가 되는, 생애 100번째 찾아 온 설날이다.

이 뜻깊은 설날을 위해 벌써 5일 저녁부터 이 옹의 막내동생과 조카가 찾아 왔다. 이 옹 슬하의 2남3녀와 조카, 손자손녀, 외손 등 모두 30여 명의 자손들이 종택을 찾아 이 옹에게 세배를 올린다.

퇴계종손 이 옹은 의성김씨 학봉종택 종손과 사돈지간. 이날 사돈집 큰일을 보고 늦게 퇴계종택을 찾은 이 옹의 막내동생 동술(71) 씨는 "형님 100세를 기념하기 위해 올해 3형제 모두 모여 과세를 하려 했으나 둘째 형님이 그만 집안사정이 생겨 못 오시게 됐다."며 "100회 생신 때쯤 조촐한 장수기원 생신상을 차려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이 옹은 요즘 젊은 부부들에게도 덕담을 잊지 않았다. "부부가 서로를 대할 때는 '상대여빈(相待如賓)'이라는 말처럼 항상 손님 대하듯 서로 공경하고 존중해야 한다."며 "올해는 모두 부부간의 금슬을 지키고 가정의 화목을 이뤄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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