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보관료가 있다면 얼마나 될까? 1년에 1만 원, 추가 1년마다 2천 원, 20년에 4만 8천 원. 이런 믿기지 않는 계산식이 가능할까? 해발 고도 1200m, 경북 봉화군 문수산 중턱에 위치한 '노란우체통'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e메일이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해 사연도 실시간으로 전송·확인 가능한 세상이지만, 인적도 드문 이 사설 우체국에는 손으로 눌러쓴 정성 가득한 편지가 매일 날아들고 있다.
노란우체통은 일종의 '편지 타임캡슐'이다. 이용자가 편지를 등록하면 원하는 기간(최소 1년부터 최장 20년) 동안 보관했다가 원하는 날짜에 도착하게끔 발송해 준다. 이용자의 연령대가 다양한 만큼 편지 속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군대 가는 남자친구에게, 곧 태어날 아기에게, 결혼을 앞둔 배우자에게, 10년 후의 미래의 자신에게 남기는 편지 등이 차곡차곡 쌓인다. 경북의 위쪽 끝자락, 포장도로를 벗어나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다시 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는 노란우체통에 가봤다.
◆노란우체통 속에 사연이 곰삭는다
노란우체통을 만든 이는 대구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전우명(45) 씨. 그가 2003년 동창찾기 웹사이트를 통해 친구들을 만난 것이 노란우체통 탄생의 계기가 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좀 예쁜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결국 '러브 빌리지'라는 구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러브 빌리지는 사랑을 주제로 한 일종의 테마파크란다. "개인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너무 큰 사업이라 그 중에 한 부분(러브 타임캡슐)만을 골라 먼저 시작한 것이 노란우체통입니다." 사업 구상 3년여 만인 2006년 12월 노란우체통은 문수산 중턱 오지에 둥지를 틀었다.
이 부지를 찾는 데는 3년이 걸렸다. 해발 780m 주실령을 돌아 넘는 길은 겨울만 되면 빙판길이 되기에 스노타이어를 장착하지 않고는 넘어갈 엄두도 못 내는 곳이다. 근처에 차 한잔 마실 곳도 끼니 때울 곳도 없다. 이런 곳에 굳이 노란우체통을 지은 것은 까닭은 이곳이 단순히 그의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부터 오지 산골을 찾았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위치하면 여름에 행락객이 몰려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춘양 주변이 예부터 실록을 보관했던 태백산 사고(史庫)가 있을 만큼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손꼽혔던 점도 낙점의 이유였다.
전 씨의 이력이 이채롭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서른 살에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997년에 도산하는 쓴 맛을 봤고 이듬 해에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도산 이후 식구들과 야반도주까지 했다. 그래도 열정으로 가득 찬 그의 도전은 계속됐고 2003년 신용불량자 딱지를 뗐다. 한방 디자인이라는 사업 영역을 개척해 좋은 성과도 얻었다.
◆마음을 담아두는 타임캡슐
왜 '노란' 우체통일까? 기자의 물음에 "우리나라 우편의 상징색이 빨강이기에"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노란색이 감성적인 느낌이 강하고 잘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 더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노란우체통은 단순히 편지를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을 담아두는 곳'이다. 편지는 종이 위에 펜으로 눌러쓴 서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편지가 도착할 때까지의 기다림과 설렘, 우연히 받아본 편지봉투 겉에 쓰여 있는 지인의 이름은 감동이 된다.
지난해 가장 먼저 노란우체통발(發) 편지를 받아 본 강모·이모 씨의 사연이 그랬다. 예비 부부인 두 사람에게 전달된 편지는 원래 11월 30일이 배달 예정일이었다. 그런데 다른 편지와 발송일에 착오가 생겨 1주일 앞서 편지가 배달됐다. 전 씨는 사과 전화를 걸었지만 오히려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들었다. 마침 편지 도착 다음날인 11월 24일이 두 사람의 결혼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축일(祝日)을 앞두고 날아든 편지로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됐고 기쁨도 배가 됐다.
◆수익은 작지만 자신감 가득
노란우체통의 첫 이용자는 경남 창녕에 사는 정모 씨이다. 노란우체통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홈페이지만 보고 신청한 것이었다. 개관 이후에는 서울의 남모 씨가 보낸 편지가 처음이었다. "세 자녀에게 꼭 전달해 달라."며 보낸 것으로, 지금까지 유일한 20년 보관용 편지다. (전 씨 자신은 가족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한 없이' 보관하고 있다.)
전 씨는 노란우체통도 일종의 '사업'이겠지만 돈을 벌자고 벌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난 한 해에만 8천여만 원을 쏟아 부었다는데, 편지 보관료만으로는 이를 보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전 씨는 그래도 여유만만했다. '한쪽이 부족하면 다른 씀씀이를 줄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설 이후로 노란우체통을 키울 여러 사업 구상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귀띔했다.
전 씨는 요즘 틈날 때마다 건물앞 약 9천900㎡(3천여 평) 부지에 전통 매화나무(정당매·월영매 등) 묘목을 심고 있다. 묘목이 한 해 한 해 쑥쑥 자라듯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노란우체통도 사랑과 감동을 전하는 편지로 꾸준히 성장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노란우체통이 혹시 문을 닫으면 편지는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그는 "만약 내가 망하거나 죽더라도 꼭 다른 사람이 사업을 이어가도록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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