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40대의 외침 "나는 살아있다"

어른의 발견/윤용인지음/글항아리 펴냄

'어른의 발견'은 한 남자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중년이 돼 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연을 담고 있다. 토끼인줄 알았던 아내가 '발견(?)'하고 보니 호랑이였음을 알았을 때, 내 말에 일방적으로 따르던 아이가 내게 '권고(?)'를 던지는 어엿한 상대가 됐음을 알았을 때, 언제나 미래가 창창하며, 꿈을 향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길은 많지 않고, 꿈은 존재조차 희미할 때….

그 난감하고 충격적인 장면에 맞닥뜨린 중년 사내의 감상문이다. 40대 중·후반의 당신도 이런 경험은 있을 것이다.

팔팔한 후배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 후배가 "선배는 꿈이 뭐예요?" 라고 물어왔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사회 초년병 때는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조금 더 지나서는 최고는 집어치우고 은퇴해서 근사하게 살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우물쭈물하는 데 용감하고 꿈 많은 후배는 거침없이 끼어든다.

'선배는 어떻게 꿈도 없어요? 참 내….'

어디 그뿐일까.

아내가 돈 걱정을 하면 '뭐가 걱정이야? 내가 갈고리로 긁어줄게.'라고 답했는데, 이제 아내가 돈 걱정을 하면 짜증이 난다. '나 더러 어쩌라는 거야? 도둑질이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중년은 다소간의 눈물과 함께 다가온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던 날 멀리 있는 줄 알았던 중년은 턱 아래 와 있었다. 중년이 턱 아래 온 것도 서러운데, 더 서러운 것은 중년의 세월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자신감으로 무장했던 내가 외로움을 느낄 때, 그때 우리는 중년이 된 것일까? 당신도 그러냐?'

작가는 딱 한 번만이라도, 그리고 단 하루만이라도 사라진 봄날을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질투, 소유, 유치한 삐치기, 혹 전화라도 걸려올까 화장실까지 휴대폰을 들고 가던 그런 감정에 빠져들고 싶다고 말한다. 혹시라도 그런 감정이 느껴지면 내가 살아있다는 말이 아닐까,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바람 피우기'가 아니다. 이성이 아니라 내 속에 아직도 남아 있을지도 모를 설렘과 만나고 싶다는 말이다.

책은 30대 남자가 40대 중반의 남자가 되는 동안 만나고 발견한 사람과 사연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제목이 모조리 발견이다. 결혼의 발견, 부부의 발견, 아이의 발견, 중년의 발견, 생활의 발견….

이 책은 가벼운 문체로 쓴 수필집이다. 작가 윤용인은 딴지일보 기자, 딴지일보 사업국장을 지냈던 사람답게 발랄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내에게 빽 소리치고 화장실에 들어가 앉았는데 밖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와 남편을 향해 쏟아내는 아내의 육두문자가 들린다. '하늘 같은 지아비에게 개XX라니, 이제 막장까지 온 거구나. 내 밖에 나가 마누라 하나 못 잡는 졸부로 찍힐 바에야 오늘 계백처럼 너를 죽이고 말리라….' 말투와 형식은 이처럼 가벼우나, 이야기는 무겁다. 252쪽. 1만 2천 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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