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상점/리궈룽 지음/이화승 옮김/소나무 펴냄
15세기말∼16세기초, 중상주의 유럽은 '지리 대발견'에 나섰다. 그 결과 바닷길은 비단길을 대신했고 동·서양을 잇는 빠른 다리가 됐다. 중국 해안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어촌은 무역항이 됐고, 항구는 도시가 됐다.
17세기 후반 청나라 강희제는 명나라이래 300여 년 지켜온 해금(海禁)정책을 폐지했다. 침체한 연해지역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서였다. 1685년 청나라는 동남 연해에 월해관, 민해관, 절해관, 강해관 등 4개의 세관을 설치했다. 4개 항구가 개방됐지만 무역의 80%는 광저우의 월해관에서 이루어졌다.
광동관청과 월해관은 안정된 거래와 세수확보를 위해 13개 상점을 지정했다. 광저우 13행(行)이다. 13행은 외국상인과 거래독점권을 갖는 동시에 세관을 대신해 세금을 거두었다. '13행'은 광저우에서 대외무역을 담당하던 상점의 통칭으로, 실제상점 숫자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양행(洋行)의 숫자는 무역규모에 따라 많을 때는 26곳, 적을 때는 4곳에 불과했다.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을 비롯해 남미에서도 선박이 들어왔다. 광저우는 동·서 무역의 중심이었다.
동·서양의 무역은 정직했다.
회계는 총명했고 계산은 빠르고 정확했다. 상점은 민첩하고 질서정연하며 세심했다. 계약을 잘 지키고, 통이 크며,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 쌍방은 성실했고 상도덕을 지켰다. 양자간에는 속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서면계약 따위는 없었지만 상호간에는 충분한 신뢰가 있었다. 이는 세계 어느 지역, 어느 시기에도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무역은 활발했다.
광저우 황포항에 들어온 영국 선단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호화롭고 큰배들이 20여 척으로 구성된 선단을 끌고 항구로 들어왔다. 악단이 연주하며 손님을 접대했다. 중국인들은 성실했고,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안전함과 풍요로움을 느꼈다. 그들은 떠날 때 아쉬워했다.
그러나 100년 이상 쌓아온 신뢰와 부의 피라미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각한 무역수지 불균형 때문이었다.
영국인들이 중국에 온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싣고 온 물건은 중국에서 팔리지 않았다. 배에 가득 싣고 온 포크와 칼은 젓가락을 쓰는 중국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산더미처럼 가져온 모직물도 자급자족 경제체제인 중국에서는 쓸모가 적었다. 반대로 중국의 비단, 차, 도자기는 유럽에서 환영받았다.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서양인들은 중국에 와서야 자신들이 가져온 상품이 중국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17, 18세기 동인도회사의 선박은 중국의 물건을 사기 위해 배 화물칸의 90%를 은(백은)으로 채워야 했다.
영국사신 매카트니가 중국에 왔을 때, 건륭제는 이렇게 말했다.
"천조는 물산이 풍부해 없는 것이 없으니, 굳이 외국 물품이 필요치 않다. 특히 천조에서 나는 차·도자기·비단 등을 서양에서 좋아하니, 짐이 은전을 베풀겠다."
이 말 속에는 자만과 외국인에 대한 멸시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양 상인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충분한 백은이 없으면 중국 물건을 살 수 없다. 어찌할까….
영국 상인들은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막힌 상품을 찾아냈다. 식민지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이었다. 양귀비의 즙으로 만든 아편. 아편을 피우려면 곰방대나 파이프가 아닌 특수한 담뱃대가 필요했다. 중국의 남자와 여자, 고관대작과 빈민이 구분없이 아편 담뱃대 아래 쓰러져갔다.
영국은 아편 수출로 중국의 백은을 흡수했고 대(對) 중국 무역수지를 역전시켰다. 아편은 은으로만 구입할 수 있었고 중국과 영국의 백은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1792∼1795년 영국의 대중국 무역은 적자에서 흑자로 바뀌었다.
중국인들은 아편을 멈출 수 없었다. 백은 유출과 관리의 부패, 군기저하, 백성들의 중독은 심각했다. 아편은 악성종양처럼 제국 전체로 퍼졌다. 급기야 청나라 정부는 아편 금지령을 내리는 동시에 수입을 금지시켰다. 이로써 17, 18세기 동·서양의 무역중심지는 19세기에 무력충돌의 현장이 됐다.
100여 년 전. 동양과 서양, 근대사회와 전통사회는 서로를 탐색했다. 중화주의와 중상주의는 동상이몽을 꿈꾸며 부의 피라미드를 쌓았다. 그러나 한쪽은 맛있는 차와 우아한 도자기를 제공한 반면 다른 쪽은 아편을 제공했다. 이들의 만남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고 고색창연한 제국의 상점은 이슬처럼 사라졌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13행의 독점권은 사라졌고 서양 상인들은 13행을 거치지 않고 교역했다. 청나라 13행과 영국 동인도회사는 둘 다 정부의 특별허가를 받아 무역을 독점했으나 한쪽은 상인 및 상업경시 분위기에 짓눌렸고, 한쪽은 유럽의 중상주의에 힘입어 세계로 뻗어갔다.
이 책은 중국과 서양의 본격 무역출발부터 아편전쟁까지 100년 이상 지속된 행상무역과 동·서양의 문화접촉을 아우른다. 중국 작가가 썼기 때문인지 중국에 온정적이고, 중화주의적 세계관이 곳곳에 묻어 있다. 그럼에도 흥미롭고 기억할 만하다. 288쪽, 1만 4천 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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