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생은 실험대상일 뿐이라고 못마땅해 하던 작년의 고3학생들에게 그럴 리가 없다며 계속 부인해오다 이젠 정말 할 말이 없어졌다. 수능점수는 무의미하며 1등급만 받으면 어느 누구라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던 제7차 교육과정이 발표되었던 당시, 누구라도 예견할 수 있었던 올해와 같은 혼선이 왜 정책을 책임 맡고 있었던 그 분들에게만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이제 등급 지상주의는 단 한 차례 출연한 단역배우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되었고, 계속되는 이러한 정책의 비일관성은 우리들에게 교육정책 특히 대학입시정책은 믿어서는 안 되며, 자녀교육에 관한 한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제도 안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어느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서 이상적이고 완벽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이를 아예 피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완벽한 교육정책이란 도대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우리를 불신하도록 하는 것은 정책의 불완전성인가 아니면 우리 민족은 교육에 관한 한 어떠한 제도에도 특유의 편법을 발휘하여 제도자체를 무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인가? 아무튼 현재로서는 어느 제도도 생명이 길지 않은 것을 보면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교육부의 그늘을 피하는 방법은 그 자체로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영어에 관한 한 단기어학연수는 소위 구색 갖추기 이상의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조기유학은 학생 본인이 겪어야 하는 환경도, 부모 및 가족에게 주는 부담도 그 대가와 부작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며 몰입교육 또한 정체성 문제 등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제도에 대한 불신은 학령의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의 체질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것 같다. 현존하는 제도의 유지여부를 확신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제도가 변하고 평가방식이 바뀌어도 생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녀교육 전략을 세운다. 높은 교육수준과 향상된 생활수준으로 자녀와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요즘의 부모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원어민과 비슷한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추는 길만이 제도가 바뀌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녀들에게 이것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하고 이런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지옥훈련을 이겨내도록 한다.
이로 인해 생기는 결과는 당연히 공교육의 불신과 빈부간의 교육격차이다. 요즘의 트렌드는 어릴 때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다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돌아와서 한국의 명문대학을 합격하여 고교와 대학 인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하던가?
작년의 학력위조사건 혹은 특목고 입시문제 유출사건 등과 같은 반사회적이고 편법적인 방법이 아닌 정당하고도 합리적인 안전한 장치를 통해 우리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문제는 우리 자녀들은 영어능력에 관한 한 어떤 형태로든지 테스트를 통해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영어능력을 평가하는 방법이 독해능력과 문법이해능력 평가뿐이었던 시기에서 듣기능력이 추가된 시기를 거쳐서 이제는 말하기와 에세이쓰기 능력까지도 평가의 대상이 되는 시대, 즉 고등교육을 받은 지성을 갖춘 원어민과 비슷한 영어능력을 가지도록 요구받는 시대가 되었다.
다행인 것은 요즘 아이들은 영어에 관한 한 과거보다 능력이 월등히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평가방식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능력 있고 도전의식이 있는 학생들은 이에 적응하여 훈련 및 학습을 통해 능력을 개발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역경을 이겨내는 능력개발을 통해 성장해 온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고 이는 현재 우리 학생들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다.
다만 교육의 본질을 벗어나 문제를 푸는 스킬만을 강조함으로써 가시적인 효과에 집착하는 일부 사교육담당자들이 우려스럽기는 하다. 그래도 앞이 보이지 않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앞날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노력과 제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자녀들에게 무한경쟁에서의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부모님들의 노고가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
배경선(영어학 박사, 빅애플어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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