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이명박 功臣(공신)과 '사면철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를 측근 功臣(공신) 중심으로 채웠다. 그 역시 어쩔 수 없구나라는 정치의 한계를 본다. 노무현 대통령 주위에 노사모가 있었고 전두환 씨 주변에 하나회가 있었듯 그에게도 측근 공신 인사만큼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노사모 모임에 나가 동지를 외쳤던 노 대통령의 모습이나 선진국민연대라는 사조직에 참석해 "여러분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됐다고 분명히 말한다"며 "앞으로 5년간 강력한 동지가 돼달라"고 한 이 당선인이나 그 모습이 그 모습 같아서다.

그날 "우리가 돈 받고 일했느냐"며 순수함을 강조했지만 사회자가 '투캅스'라고 소개한 ㅂ씨와 ㄱ씨는 당선인 비서실 팀장과 인수위원으로 발탁됐었다. 널려 있는 인재 중에 이왕이면 믿는 측근과 공신을 뽑아 쓰는 건 인지상정 시샘거리가 아니다. 다만 어제 발표된 청와대 수석들의 면면을 보면서 부디 이번만은 하는 심정에서 이 당선인과 새 정부 공신들이 깊이 새겨줬으면 하는 苦言(고언)을 드린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든 정권의 주체가 바뀌는 권력 전환기에는 거의 예외없이 한 가지 속성이 반드시 나타난다. 언제나 집권 초기 지도자와 공신들은 깨끗한 개혁의 의지와 투지로 부푼다. 언론에 내놓은 프로필도 하나같이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청렴과 신념 국가관이 흰눈처럼 깨끗하고 걸출하다. 그러나 길면 1년 짧으면 6개월도 안 돼 평범한 술꾼들의 作心三日(작심삼일)을 닮게 되는 속성이 나온다. 측근은 권력자와 가장 가까운 순서대로 비리에 연루되고, 화려하게 소개된 프로필은 무능이 드러나거나 부패 따위로 얼룩져 왔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이 새 정부 탄생의 진짜 일등공신이라는 노무현 정권만 되돌아봐도 집권 즉시 오른팔, 왼팔 하던 측근부터 감옥에 들어가기 시작했었다. 민주화 대통령들의 아들들과 비서실장, 주변의 측근 '깃털'들이 줄줄이 부패로 처벌된 잃어버린 10년도 똑똑히 봐왔다. 새 정부의 측근들이라고 특별히 방부제에 담갔다 내놓은 인물들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지만 역사의 경험법칙들이 그런 편안한 판단을 허락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작심삼일이 아니라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그런 징조를 보인 바 있다. 선거공신들에게 전리품처럼 자문위원이니 정책연구위원 따위의 위촉장을 600여 장이나 마구잡이로 발행해 일부 자문위원은 종잇장 하나 들고 이권 장난치다 걸려드는 망신을 자초한 것이 그 예다.

마치 明(명)나라를 세운 朱元璋(주원장)이 개국 공신들에게 赦免鐵券(사면철권)을 나눠줬던 거나 다름없다. 사면철권은 주원장이 하사한 쇠패를 가진 공신은 세 번 잘못을 저질러도 사면해 준다는 공신에 대한 특혜의 報恩(보은)이었다. 그리고 그 보은은 부패의 씨앗이 됐다.

청와대 비서실에 이어 앞으로 공신들에게 씌워줄 수 있는 감투가 2천 개가 넘는다고 하니 이 당선인이 새겨야 할 것이 바로 이 주원장의 사면철권 교훈이다. 주원장은 사면철권을 믿고 개국 직후부터 부패하기 시작한 공신을 꺾기 위해 철권을 술집에 잡힌 호위대장 출신 최측근 공신 한 명을 궁궐 부실공사 죄목으로 잡아다 '철권이 없으니 사면해줄 수 없다'며 본보기로 처형해 버렸다. 그리고 태묘 앞 큰 화로에다 불을 지피고 공신들을 소집한 뒤 '넣기 싫은 자는 안 넣어도 된다. 그러나 안 넣은 공신은 몸조심해야 할 것이다'고 위협을 주자 모든 공신이 사시나무 떨듯 줄을 지어 너도나도 불 속에 던져 넣었다. 그 뒤 주원장의 공신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공신이란 특권행사를 꿈꾸지 못했다.

이명박 당선인이 측근과 공신 기용에 성공하고 그것이 국정 성공으로 이어나가려면 어느 정도의 논공행상은 정치의 한계로 양해하되 인수위의 탈선처럼 공신의 거드름이 나타날 징조가 보일 때는 주원장 같은 단호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와 집권 공신들에게 경제부흥의 의무만 주었지 사면철권을 주지는 않았음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명예주필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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