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파트 마당을 나서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2, 3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와 젊은 어머니가 마주 서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정말이니?" 어머니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놀라는 모습을 지어보였다. "그것뿐인지 아세요. 닭다리도 또 먹었어요." "이야! 정말 좋았겠다." 이번엔 어머니가 손뼉을 치면서 아이 말에 맞장구까지 친다. "그러니까 먹을 거는 아무 것도 사지 마세요. 알았지요?" "그으래, 알았어요. 어이구 우리 아들!" '먹을 것은 아무 것도 사지 말라.'는 말에 감동까지 하면서 아이 엉덩이를 툭툭 쳤다.
어디서 맛있는 것을 많이 얻어먹고 들어오는 아이와 시장 가는 어머니가 딱 만난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맛있는 걸 뭘 사올까 물었겠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내가 듣게 되었고.
이야기를 끝내고 아이는 집으로, 어머니는 시장으로 갔다. 폴짝폴짝 뛰어 가는 아이 발걸음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젊은 어머니 발걸음 역시 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게 한 눈에 보였다. 아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어머니. 그것도 건성으로가 아니라 맞장구까지 치면서 들어주는 어머니, 정말 훌륭한 교육의 한 장면이었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노는 시간, 공부 시간 가리지 않고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공부 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손바닥을 맞아가면서도 이야기를 하는 게 아이들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집에 가서 하고 싶고, 집에서 있었던 일을 동무들이나 선생님에게 하고 싶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 못 견뎌하는 그 많은 이야기들은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겪은 일을 머리 속에 정리를 해 남에게 신나게 들려준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논술이요, 논리 공부인가! 여기서 창의성이 길러짐은 물론이다. 이러한 놀라운 공부는 단지 부모가 귀만 열어주면 된다. 그리고 맞장구쳐주면 된다.
우리 아이 이야기에 귀를 열어주자. 아무리 바빠도 아이가 신나게 이야기를 할 때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자. 건성으로 듣지 말고 반응하면서, 맞장구치면서, 감동하면서 들어주자.
부부가 이야기를 할 때도, 형제가 이야기를 할 때도, 아이와 이야기를 할 때도 맞장구를 친다.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맞장구를 치면서 듣는 버릇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 공부 시간에 선생님 말씀에 반응하면서 듣는다. 귀에 쏙쏙 들어오고 말고다. 동무들 이야기를 맞장구치면서 듣는다. 동무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말고다. 맞장구치면서 듣는 습관이 되어있는 아이는 공부도 잘하게 되고 또래 모임에서 인기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 집에는 내 이야기를 맞장구치면서 들어주는 식구들이 있다. 학교 마치고 집으로 가는 아이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아이는 행복한 가운데 바르게 자란다.
윤태규(대구금포초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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