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바빠 애들 교육에 신경쓸 틈이 없어요."
경북 상주에 사는 이호영(45) 씨는 최근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지만 컴퓨터를 장만했다. 이 씨는 "나도 막노동을 나가고 베트남출신 아내도 식당일을 나가 초교생인 애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서 "집에 혼자 틀어박혀 TV만 보는 게 안쓰러워 컴퓨터를 하나 사줬다."고 했다.
직장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사는 일본 출신 이루(40) 씨는"식당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아이가 라면을 먹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면서 "몸이 피곤한데다 나도 한글을 잘 모르는데 가르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문화가정 2세의 생활은?=상당수 아이들이 홀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이다. 경북지역 경우 최저생계비(4인 기준·월 120만 5천 원) 이하를 버는 가정이 42%나 됐고 월평균 가구소득 100만~199만 원을 버는 가정이 37%로 가장 많았다. 또 여성 결혼이민자의 51% 정도가 직업을 갖고 있어 아이들의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높은 이혼율도 아이들의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또다른 원인이다.
외국인 엄마를 둔 지은(가명·12)이는 최근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매일 술 주정을 부리던 아버지의 행패를 참지 못하고 어머니가 집을 나갔기 때문. 지은이의 담임인 김모 씨는 "지은이가 얼마전부터 우울해 보여 가정 방문을 해보니 부모가 이혼을 했더라."고 전했다. 경북에는 2004년 75건에서 2005년 117건으로 늘었고 2006년에는 228건으로 해마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매년 2배 가까이 느는 추세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출까지 포함하면 가정 붕괴현상은 더 심각하다.
장흔성 구미시 결혼이주여성지원센터장은 "아이들은 말이 잘 되지 않으니 밖에 나가기 싫어하고 집안에서는 가정폭력, 무관심에 시달리는 등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정체성 혼란=필리핀에서 시집온 휴티엔(32) 씨는 얼마전 아들 승수(가명·9)의 돌출발언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하루는 아이가 학교에 갔다가 울면서 뛰어오더니 '엄마, 나 진짜 외계인이야?'라고 물어봤어요. 그때 얼마나 미안하고 죄스럽던지."
아이가 피부색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외계인이라며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학기가 바뀔 때마다 각별히 선생님을 찾아가 아이를 부탁한다."면서 "방학 때 친정집에 다녀온 사실도 승수 친구들에겐 비밀로 해 달라고 선생님께 신신당부한다."고 했다.
네팔에서 시집온 지연이(10) 엄마는 "학교에서 딸아이 별명이 '네팔'이라고 하더라. 아이가 '엄마하고 나만 피부가 까매'라고 울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하소연했다.
다문화가정 2세들은 성장함에 따라 피부색, 집단 따돌림 등으로 인한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한 일본인 주부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일본 식민통치 등 한국의 역사에 대해 배우게 돼 큰 걱정이다."고 했다. 교육 관계자는 올해부터 초등학생부터 다문화 교육을 정규교과과정에 넣을 예정이지만 피부에 와 닿는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평택대 청소년복지학과 정하성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국제결혼가정 자녀 중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16.7%에 그쳤고 43.3%가 스스로를 외국인으로 여겼다.
베트남 출신 어머니를 둔 이현우(22·가명) 씨는 "사춘기때 엄마 이름이 길다는 이유로 아이들한테 놀림을 무척 많이 받았다."며 "그때에는 정말 내가 한국인이 아니고 이방인 같았다."고 했다.
현재처럼 다문화가정 2세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뚤어져 있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 꿈을 먹고 자라는 2세 아이들
지난해 12월 23일 경북 봉화군 춘양초등학교의 방과후 특별학교. 20명 남짓한 아이들이 저마다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선 뭔가 열심히 만들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크리스마스날 부모님께 보낼 카드였다. 직접 그림도 그리고 편지도 썼다. 일본인 엄마를 둔 은실(9·여)이는 그림을 유독 잘 그렸다. 받아쓰기도 틀린데가 없다.
같은 시간 학교 운동장. 은혜(9·여)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연방 또래들과 어울려 연날리기에 정신이 없다. 며칠뒤 대구 달성군 구지초교에서 만난 다문화가정 2세 혜진(11·여)이도 가수 원더걸스의 텔미춤을 쳐 보이는 등 활달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다문화 시범학교로 지정한 춘양, 구지 초교는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힌다. 두 학교의 사례는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해줬다. 구지, 춘양초교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5명의 다문화가정 2세를 만났다.
▶일본출신 엄마를 둔 김승무(10·춘양초교)군=건축가가 꿈이다. 좋은 집을 지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집 없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레고, 집짓기 놀이 등에 관심이 많다. "뭐든지 자동으로 되는 집을 만들고 싶어요. 가난한 사람과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는 집을 짓는게 꿈이에요"
▶엄마가 필리핀에서 시집온 정운연(8·춘양초교) 양=매운 매운탕을 좋아한다. 이날도 점심 급식때 나온 우럭 매운탕을 단숨에 헤치웠다. 기자가 몇가지 물으려 하자 운동장에 나가 뛰어 놀아야 된다며 달아났다. 변명은(33) 교사는 "부모님들이 워낙 좋으신 분이고 교육열도 대단하다."며 "좋은 가정 환경 탓에 허물없이 애들과 잘 어울린다."고 했다. 노래도 무척이나 잘 한다. 운연이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일본인 엄마를 둔 최은실(9·춘양초교) 양=반에서 제일 말이 많고 시끄럽다. 담임인 박희성 교사는 "반에서 가장 활발하고 받아쓰기는 언제나 만점이다."며 "공부 잘하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많아 지난해 부반장을 했다."고 칭찬했다. 엄마 미지오치시즈코 씨는 "딸 아이가 제 성격을 닮아 활발한것 같다. 나도 학창시절에 무척 개구쟁이 였다."며 웃었다.
▶베트남출신 엄마를 둔 혜진(11·여·구지초교) 양=아픈 사람을 돕는 의사가 되고 싶다. 엄마 아빠가 나중에 나이가 들면 할머니처럼 무릎이나 어깨가 아프지 않도록 보살펴주기 위해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가 돼 동네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더 오래 건강하게 사시도록 보살펴 주고 싶어요."
▶엄마가 베트남에서 시집온 이준한(11·구지초교) 군=경찰이 되고 싶다. "착한 사람 괴롭히는 사람을 혼내주고 싶어요." 때문에 준한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도 체육시간이다. "선생님께서 몸이 튼튼해야 경찰이 된다고 하셨어요." 준한이는 오늘도 학교 놀이터에서 철봉을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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