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 스프링쿨러도 없다

▲ 해인사 인근 말사인 홍제암에서 스님과 소방사들이 합동 소방훈련을 하고 있다.
▲ 해인사 인근 말사인 홍제암에서 스님과 소방사들이 합동 소방훈련을 하고 있다.

경남 합천 해인사(주지 현응스님)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경내에 소화전을 설치하고 순찰과 소방훈련 등으로 화재에 대비해 왔으나, 취약점이 너무 많다는 위기감에서다.

해인사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판(제32호)과 판전(제52호) 등 국보 3점, 고려각판 등 보물 14점, 대적광전 등 지방지정 문화재 13점 등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11일 둘러본 해인사는 다른 사찰에 비해 비교적 안전시설이 잘돼 있다지만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초동진화를 위한 소방시설로는 경내 소화전 25개소(판전용은 6개소)와 소화기 30여 개, 경내 소방펌프카(5천ℓ) 1대가 고작이다. 또한 소방차(2천500ℓ) 1대와 3~5명의 소방사가 교대로 근무하는 소방지구대는 집단시설지구 상가단지에 위치해 출동 소요시간이 7~10분, 합천·거창·고령소방서에서 현장까지는 40~50분 걸린다.

따라서 초동진화에 실패할 경우 화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험이 없지 않다. 헬기지원도 그렇다. 겨울철 산불예방기간(11월~5월 말)에는 합천군이 보유한 헬기 1대가 출동할 수 있지만, 경남도 산림청 헬기를 지원받을 경우 20~30분이 걸려 효용성이 없다는 것.

해인사 말사 홍제암 주지 종성 스님은 "숭례문 화재를 보듯이 목조건물의 경우 헬기나 소화전으로 지붕에 물을 뿌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며 "스님과 감시원을 배치해 순찰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해인사는 그나마 지난 2006년 낙산사 화재의 충격으로 판전 내에 적외선 화재감지기와 CC TV, 용수 확보를 위한 600t 규모의 집수장 확장과 배수관로 시설을 갖췄다. 그러나 초동진화에 가장 효율적인 스프링클러 시설은 경판과 판전이 목재라는 이유로 설치되지 않고 있다. 또한 합천군이 문화재청에 신청한 수막형성 시설과 방수총 설치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수막시설은 대형 산불이나 인근 암자 화재시, 사방에서 물이 분사돼 판전 일대에 수막을 형성해 불이 옮겨 붙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다. 또 방수총은 판전 곳곳에 설치돼 위급시 자유자재로 발화지점을 향해 분사하는 시설로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초동진화를 위한 첨단장비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합천군청 이기상 문화재담당은 "판전이 화재에 가장 취약한 것은 접근성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초동진화에 실패할 경우 소방차의 현장출동 시간과 거리, 취약한 주변환경 등 모든 것이 악조건"이라며 "팔만 장이 넘는 경판을 소산(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하는 것도 뜨거운 열로 인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방차가 판전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판전 뒤와 대적광전 뒤편뿐이다. 그러나 판전에서 불과 10여m 떨어져 대형 화재시 뜨거운 열로 인해 접근할 수 없고, 용수 공급을 위한 소방차 교차로마저 확보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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