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산~해평~도개까지 25번 옛 국도를 따라서

바삐 지나쳤던 길 옆에…풍경이 있었네

길은 추억을 담는다. 쭉 뻗은 신작로이건, 구불구불 산모롱이를 돌아내리는 비탈길이건, 동네 어귀를 얼핏 보여주고 이내 사라지는 골목길이건 상관없다. 그 길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치 먼지 풀풀 날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시골 장터에 나온 할머니가 보따리를 풀어내듯 이야기는 헤쳐지기 마련이다. 힘겹게 이고 지고 가져온 보따리마다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길 어귀에 다다르면 굳이 찾지 않아도 무의식의 깊은 바다에 잠겨있던 추억의 보따리들이 풀어질 것만 같은데…. 하지만 길은 바뀌어 있다. 세월 따라 변해버린 내가 너무도 아쉬워서일까, 아니면 잊힌 나를 찾을 길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너무도 커서일까? 길을 잃고 허탈한 웃음을 짓다 못해 울컥 설움이 몰아친다. 개발의 열풍 속에 푸릇푸릇하던 옛 시절의 잔상들은 누렇게 말라 형체를 찾을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망각의 먼지는 무게를 더해간다. 나이를 먹고 길은 변한다.

◆느긋함이 주는 즐거움

25번 국도를 찾았다. 경남 창원에서 출발해 밀양, 청도를 지나친 25번은 대구에서 칠곡군 가산면까지 5번 국도와 함께 내달리다가 잠시의 인연을 뒤로 한 채 갈라선다. 25번은 상주를 향해 왼쪽으로, 5번은 안동을 찾아 오른쪽으로 나뉜다. 왼쪽으로 접어들면 시원스레 뚫린 4차로 국도가 눈에 들어온다. 몇 해 전 새로 닦인 25번 국도다. 하지만 빠른 길은 재미없다. 느긋함을 찾아 떠났다면 일부러 옆길로 새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 새 길을 올라서자마자 오른쪽 '송학리' 표지판을 따라 옛 길로 빠져나와야 한다.

사람들은 빠름을 좇고, 빠름은 길을 곧게 만든다. 굽었던 길은 잊히고, 곧은 길을 달리는 사람들은 목적지만을 향할 뿐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25번은 빠름을 좇는 이들을 위해 굽은 허리를 쭉 폈지만, 마을을 잇고 사람을 이어주던 옛 길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25번 옛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은 늘 새로우면서 예스럽다. 옛 길을 따라 새 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자칫 방심해서 '상주, 선산' 표지판을 찾다 보면 어느새 새 길로 올라선다. 긴장하지는 않더라도 방심해선 안 된다. 새 길은 제한속도가 시속 80㎞, 옛 길은 60㎞다. 한 시간에 달릴 수 있는 20㎞의 거리 차이, 아니 시간 차이는 주변 풍경을 사뭇 다르게 만든다. 느긋함이 주는 즐거움이다.

뒤따르는 차가 있어 쫓길 필요도 없고, 앞서 가는 차가 있어 앞지를 필요도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25번은 노쇠한 여행가가 한 줌 햇살이 스며드는 돌담에 기대어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듯 편안히 쉬고 있다. 저 멀리 달리는 젊은 25번을 보며 이렇게 전하는 듯하다. "무엇이 그리 바빠서 바람이 비껴가는 저 산모퉁이에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무엇이 그리 급해서 황톳빛 들판 아래 살아 꿈틀거리며 아우성치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느냐?"고. 함께 가는 이가 있다면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어 좋고, 혼자 가는 길이라면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옛 노래를 즐길 수 있어 좋다. 가끔 길은 이렇게 물어온다. "무엇을 찾고, 무엇을 버리러 왔느냐?"고.

◆해평습지에서 만난 강바람

산동면을 넘어서 괴곡 삼거리를 지나며 찬찬히 왼쪽을 살펴보면 '낙동강 철새도래지'를 알리는 입간판이 보인다. 25번 새 길 아래를 지나 낙동강 둑을 찾아가면 철새들이 찾아드는 해평습지를 만날 수 있다. 평소 같으면 해평습지를 거쳐가는 나그네 철새를 해코지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낙동강유역 감시단 관계자가 차를 대놓고 지키고 있기 마련. 하지만 제방을 보수하는 공사 때문인지 컨테이너와 굴삭기 한 대만 달랑 놓여있을 뿐 강둑은 조용하기만 하다. 예전엔 차를 타고 둑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었지만 공사로 길은 막혀 있다. 저 멀리 울음이 들려와서 그네들이 쉬고 있음을 알 뿐 날아 오르는 철새 한 마리 눈에 띄지 않는다. 탁 트인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곳까지 찾아온 값어치는 충분히 할 성싶다. 강바람에 묻어오는 봄기운을 느꼈다면 너무 이르다고 타박할까?

잠시 외도(?)를 끝내고 다시 25번 옛길에 몸을 싣는다. 한때 수많은 직행버스, 완행버스, 화물차, 승용차가 달렸던 그 길은 호젓한 시골 지방도와 다른 느낌이다. 고즈넉한 맛은 없지만 추억을 되새김질하기에 차라리 낫다. 예전, 길을 멈춰 허기를 달래주던 식당들의 창틀엔 먼지가 뽀얗게 앉았고,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법한 면 소재지 정류장에는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촌부가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느릿느릿 달리던 승용차는 더 느리게 달리는 경운기를 추월한다. 어느덧 해평면을 지나고 있다.

◆도리사가 있는 태조산에 올라서

넓디너른 해평들을 뒤로 한 채 야트막이 솟아있는 야산을 돌아들면 도리사(桃李寺)로 접어드는 길을 만난다. 이곳을 찾아온 시기가 참 절묘하다. 신라 19대 눌지왕 때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포교 활동을 하며 세운 절이 바로 도리사. 때 이른 겨울에 복숭아꽃과 배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도리사는 멀다. 국도 옆 산문을 지나서도 차를 타고 10여 분을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비탈길을 허위허위 오르다 보면 어느새 태조산 꼭대기 바로 밑에 자리 잡은 도리사에 도착한다. 인적이 드물 수밖에 없는 한겨울, 그것도 평일에 찾았으니 가능한 일이다. 절의 풍광은 찾는 이의 품성에 따라 달리 보인다. 하지만 도리사는 여느 절과는 달리 누가 찾아와도 그저 한 마디, "예쁘다."는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군색스럽지도 않다.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적멸보궁 계단 밑에 앙증맞게 자리 잡은 아기불상이 눈길을 끈다.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도 있구나. 소박하게 내민 손에는 누군가 얹어놓은 동전 몇 푼이 햇빛에 반짝인다. 버릇없다 욕할지 몰라도 살포시 안아주고픈 충동을 느낀다.

도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 있다. 절 뒤편에 꾸며놓은 널찍한 솔숲 쉼터에 올라 능선을 딛고 보면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거의 태조산 정상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경치는 언어가 지니는 표현 범주를 넘어선다. 저 멀리 낙동강 줄기가 햇살을 되비치고, 새로 뻗은 25번 국도 위로 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그 순간, 눈 앞을 스쳐가는 한 물체. 전투기가 나는 모습을 위에서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행운이다. 전투기 조종석이 뚜렷이 보일 만큼 가깝게, 그리고 재빨리 횡으로 지나간다. 참 빠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 의우총, 의구총, 낙산리 고분군

밭 갈던 주인을 덮쳐 물어뜯는 호랑이를 뿔로 들이받아 물리친 황소, 산불이 난 줄도 모르고 술에 취해 쓰러진 주인을 구하기 위해 강물에 몸을 적신 개 이야기는 그저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25번 옛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의우총'(의로운 소의 무덤)과 '의구총'(의로운 개의 무덤)을 만날 수 있다. 의우총은 산동면 인덕리, 의구총은 해평면 낙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인조 때 만들어진 '의열도'에 그림과 함께 의로운 소와 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지난 1993년 비석만 남아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 무덤으로 만들었다. 무덤 뒤에 조각된 4폭(의구총)과 8폭(의우총) 그림은 의열도에 남아있는 것을 재현한 것이다.

해평면 낙산리에는 사적 제 336호로 지정된 '선산 낙산리 고분군'도 있다. 옛 길을 달리다 보면 수십 기의 무덤이 야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는 무려 200여 기의 무덤이고, 원삼국시대부터 통일삼국까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 양식이 발견됐다. 금제 또는 금동제 귀고리 등이 출토됐으며, 당시 이 일대를 지배하던 토착 지배세력의 집단 묘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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