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랬는데…."
숭례문 화재 사건은 4년 전 화재로 소실돼 버린 대구 앞산의 천년 고찰 임휴사(臨休寺·달서구 상인동)와 닮은 면이 많다. 두 곳 모두 방화에 의해 불이 난 뒤 열악한 소방 장비, 초동 진압 실패 등으로 순식간에 전소됐다. 임휴사는 장기간에 걸친 복원 공사를 최근 마무리하고 다음달 완공식을 준비하고 있다.
◆천년 사찰, 30분만에 잿더미로…
12일 임휴사에서 만난 주지 현장 스님은 "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인 채 무너지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4년 전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식은땀이 났다."고 말했다.
임휴사는 2004년 7월 초 새벽,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대웅전과 삼성각 등 사찰 주요 건물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화마는 바싹 마른 목조 건물을 불쏘시개 삼아 삽시간에 대웅전 전체를 휘감았고, 이내 엄청난 연기와 열기를 뿜어냈다. 승려와 소방대원들은 손쓸 겨를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대웅전을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넓은 경내를 비추는 CCTV는 3대에 불과했고, 소방도구라고는 간이소화기 몇 대가 전부였다. 사찰 내 소화전을 틀어도 작동조차 되지 않았다. 신라시대(921년)에 창건, 고려 태조 왕건이 팔공산에서 견훤과의 전투에서 패한 뒤 이곳에서 군사를 재정비했다는 역사를 간직한 천년 고찰이 단 30분 만에 잿더미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주지 스님은 "차라리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며 당시 심정을 떠올렸다.
◆"이젠 철통방화" 교훈 되새겨
임휴사는 불탄 대웅전 자리에 새 대웅전을 짓는 등 사찰 복원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음달 완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임휴사 측은 화재 대응 시스템 마련에 가장 심혈을 쏟았다.
열감지 자동센서가 장착된 최첨단 화재경보 시스템을 새로 갖췄고, 대웅전 주변과 사찰 곳곳에는 33대의 CCTV가 밤낮없이 살피고 있다. 곳곳에 소화기를 배치하고 물대포도 갖췄다. 승려들은 만약의 화재에 대비해 정기적으로 소방 훈련을 받고 있다. 승려들은 고리만 돌리면 바로 세찬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방 장구를 다루고 진화 시뮬레이션까지 짜놨다.
임휴사 승려들은 "4년 전에 현재와 같은 소방 시스템을 갖췄더라면 소중한 불상과 사찰을 통째로 잃는 아픔은 없었을 것"이라며 "새롭게 복원되는 숭례문뿐 아니라 전국의 목조 문화재, 전통 사찰에 대한 소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 "숭례문 복원 지름 1m 금강송 확보가 최대 관건"
"소실된 문화재는 아무리 완벽히 복원해도 재현에 불과합니다."
문화재 전문 보수업체인 '창성건설'의 부사장인 박현수(56) 씨. 최근까지 앞산 임휴사 복원을 했던 그는 지난 30여 년간 석굴암,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전, 경주 남산 등 각종 세계문화유산, 전통 사찰 등의 보수현장에 참가한 전문가다.
"목재 확보가 가장 어렵습니다. 숭례문처럼 완전 소실한 문화재는 자재 확보에 엄청난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에요." 박 씨는 "임휴사 대웅전을 재현할 때도 1년가량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목재를 구했다."면서 "숭례문에는 임휴사 대웅전에 쓴 육송보다 더욱 귀한 금강소나무를 써야 하기 때문에 목재 확보가 관건"이라고 했다.
보통 사찰의 기둥은 지름 45cm가량의 육송을 쓰지만 숭례문 기둥은 지름이 1m에 달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 정도 굵기의 금강소나무를 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 문화재청에 따르면 울산 등지에 문화재 보수용으로 20여만 그루의 금강소나무를 키우고 있지만 이중 지름이 최대 90cm에 이르는 소나무는 10여 그루에 불과하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죠. 모양은 똑같이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그속에 녹아 있는 민족혼까지 되살릴 수는 없어요. 숭례문 화재 사건이 좋은 교훈이 될 겁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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