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 고양이를 부탁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나 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이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시절이 아닐까. 이 영화는 실업계 고교를 막 졸업한 스무 살의 동갑내기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혼란에 대한 이야기다. 진로를 일찌감치 결정해 증권회사에 입사한 야심 찬 혜주, 봉사 활동에서 알게 된 뇌성마비 시인을 사랑하는 몽상가 태희, 미술에 재능이 있지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지영이, 그리고 천방지축 쌍둥이 자매는 서로를 보루로 똘똘 뭉쳐 다니는 단짝 친구들이다.

이젠 갈 길을 찾아 뿔뿔이 떠나야 하지만, 이들은 외부와 쉽게 타협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되돌아오곤 한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냉정하게 주위를 경계하는 부류를 '캣 피플'(cat people)이라고 하듯, 지영이가 길거리에서 주워온 고양이 한 마리는 '야생동물과 애완동물 사이에 있는 고양이 같은 존재'인 이들의 참 적절한 은유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참 길고 지루한 시간일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이미 어른으로 성장하였지만, 아직 사회적으로는 어른 한몫을 해낼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10대에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은 취향으로 인정되지 않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더라도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을 권리가 없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어린 아이에서 성인기로 직행하면서 사춘기가 짧거나 아예 없었다. 14살에 지게 지고 장사를 다녔고, 16살에 아들을 낳았다는 할아버지에겐 사춘기다, 청소년기다 하는 말들이 책임회피로 보여 질 뿐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복잡하고 기계화되면서 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만 사회에 나가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발달심리학자인 에릭슨은 청소년기를 '사회심리학적 유예기'(psychosocial moratorium)이라고 했다. 7, 8년간 책임과 의무를 유예시켜주는 대신 청소년들이 해야 할 과제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신체변화에 잘 적응하고,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어떤 직업과 인성을 가지고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2월은 졸업으로 마음이 들떠있지만, 어쩌면 20살은 정체성의 과제가 완성되는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궤도에서 시작하는 시점일 지도 모른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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