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고마운 선물

살다 보면 선물을 받을 때도, 줄 때도 있다. 그 선물에 주는 사람의 감사 마음이 묻어 있다면 크기에 관계없이 받는 사람은 행복해진다.

지난 주는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설 연휴였다. 이맘때가 되면 나도 지난 한 해 많은 도움을 준 분들에게 작은 감사선물을 보내곤 한다.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종종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분들도 있다. 어려운 치료 과정을 묵묵히 잘 참아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데 음료수, 빵, 케이크, 직접 재배한 채소, 콩 등 다양한 종류의 선물을 주시는 분들이 있다. 어떤 분은 치료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영주에서 직접 수확한 사과를 보내주셨고, 반찬을 가지가지로 곱게 싸와 점심시간을 풍성하게 해주신 분도 계셨다. 환자에게 받은 선물 중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선물은 바로 노래다. 치과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너무 두려운 나머지 치과 의자에 앉기도 전에 뱅뱅 돌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정말 내 속이 마르고 닳아 없어지도록 부른 아이도 있었고, 치료 내내 '떴다, 떴다 비행기'를 불러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틈틈이 치료를 한 적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선물이 아니고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방학 때면 북구 복현동에 있는 성보재활원이라는 곳에 진료를 가곤 한다. 성보재활원은 주로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3년 전부터 치과 진료실을 마련해 매주 여러 선생님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성보재활원에서는 입소한 분들을 '생활인'이라 부르는데 '원생, 장애인, 장애우'보다 현실적이고 더 친근한 생각이 든다. 지난 겨울방학 때도 진료를 갔었다. 치과 진료의자가 하나밖에 없어 정신없이 진료를 하는데 한 생활인이 치료 후 나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어디 불편한 곳이 있나요?"라고 재활원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분에게 묻자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노래를 한 곡 불러 주고 싶다."고 한다. 마침 좀 휴식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호기심도 생겨 한번 해보라고 했다. 남자인데도 한쪽 무릎을 굽혀 여자처럼 다소곳이 큰절을 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원,투, 쓰리 후 "♬ 어머나 어머나 #$%&$(못 알아들음)…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하고 장윤정의 '어머나'를 율동과 함께 불러 주었다. 발음이 약간 부정확해 노래 가사 전달은 제대로 안됐지만 음감, 춤, 노래에 대한 진지함에 절로 박수와 웃음이 나왔다. 치료 후 감사의 마음을 노래로 전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의 휴대전화에는 아직 그 생활인의 노래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담겨 있다. 치료 중에 환자들이 나를 의심하거나 치료가 예상보다 잘 되지 않아 우울할 때 가끔 재생해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영웅은 술집에는 많지만 치과에는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치과 치료를 두렵고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우리집 아이들도 치과에 놀러올 때는 "아빠~ ~" 하고 큰소리로 뛰어 들어오지만 치료를 받으러 올 때에는 딴청을 부리며 차 문고리를 잡고 늘어지곤 한다. 그래서 나도 이런 두렵고 부담스러운 치료를 잘 참아준 환자들에게 노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음치다. 나의 환자들에게 지면으로 감사의 마음을 대신 전한다. "♬텔미, 텔미, 텔레텔테 텔미♬"

장성용(장성용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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