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병원 진료 대기실 '인권 사각지대'

전모(42) 씨는 최근 어머니를 모시고 대구 A대학병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복도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들어간 곳은 진료실. 진료 중인 환자 옆으로 대기 환자 2명이 앉아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다 보니 진료를 받는 환자와 의사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듣게 됐다.

전 씨는 "의사가 '큰 병인 것 같으니 응급실로 가서 검사를 받으라'며 환자를 내보낸 뒤 응급실로 전화해'암인 것 같다'고 전달하는 걸 대기 환자들이 모두 들었다."며 "아무리 진료를 빨리 진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환자 본인이 모르는 내용을 다른 사람이 안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진료실에 대기 환자가 들어갈 수 없도록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환자들이 몰리다 보니 일시적으로 진료실에서 기다리게 한 것 같은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진료실에 환자를 대기시키는 관행이 계속되면서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받는 사례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구의 일부 대학병원은 진료실 안이나 바로 문 밖에 대기용 간이 의자를 두고 차례를 기다리게 하는 구조를 갖춘 진료실들이 적잖은 실정이다. 이 같은 진료환경으로 인해 환자의 병력(病歷)이나 상담 내용이 대기자들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특히 민감한 신체 부위의 질병과 관련해선 이런 체계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이 거세다. 이런 공개진료행위는 의료법 제19조 비밀누설의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국정감사나 시민단체 등에 의해 여러 번 지적받기도 했다.

해당 병원들은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시설의 구조적 문제,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적극적인 개선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실제 B대학병원의 경우 현재 병원 구조와 규모 등의 여건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당장 개선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정감사 때 지적받은 C대학병원은 현재 병원 리모델링 사업을 하고 있지만 문제가 된 곳부터 대기 체계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가고 있는 상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한정된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진료실에 대기 환자를 들여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구조 개선을 통해 계속 대기 시스템을 바꿔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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